[비욘드무비-69] 1984년 시작된 '터미네이터'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가 돌아왔다. '터미네이터:제니시스'는 인기 시리즈물 정체성은 지키면서 요즘 시대에 맞는 세련된 옷을 입었다. 세월의 무게만큼 터미네이터 얼굴에는 주름이 늘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더욱 묵직해졌다. 용광로에 몸을 던지던(2편) 그는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여전히 인류를 위해 희생한다.

"아이 윌 비 백." 터미네이터의 귀환이 반가운 이유다.

줄거리는 터미네이터 시리즈 네 편 이야기를 한데 모아놨다. 로봇 군단 스카이넷과 인간 군단 간 대립이 첨예한 2029년. 스카이넷은 인간군을 이끄는 엘리트 사령관 존 코너(제이슨 클라크)를 제거하기 위해 악당 터미네이터들을 1984년 과거로 급파해 존 코너 어머니 사라 코너(에밀리아 클라크)를 죽이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존 코너는 충직한 부하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를 사라에게 보낸다. 과거의 사라는 조력자 터미네이터 T-800(아널드 슈워제네거)과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미래의 존 코너는 스카이넷에 체포된 뒤 무서운 비밀 병기 터미네이터 T-3000으로 개조된다.

포탑이 탑재된 원시 모델 T-1(1편)에서 출발한 터미네이터는 5편에서는 최첨단 인공지능에 도달한다. 시리즈 역사상 최강의 악당, 최첨단 나노 입자로 만들어진 T-3000은 사실상 제거가 불가능한 완벽한 터미네이터다. 피부 세포조직마저 노화하고 있는 T-800은 연륜과 지략으로 T-3000을 때려눕힌다. 이를 연기한 아널드 슈워제네거(68)는 악당 터미네이터들을 한 손으로 들어올리고 공중으로 집어던진다. 노장의 액션 투혼은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마음 한구석을 자극한다.

영화에서 T-800은 "나는 늙었지만 쓸모없진 않다"고 말한다. 희끗한 흰머리는 세월을 속일 수 없다. 원조 터미네이터는 조금만 때려부숴도 오른손이 굳는 것 같고, 한참 달리면 무릎이 저려온다고 한다. 31년 전 1편부터 봐온 관객들 또한 나이를 먹은 터. 천하무적인 줄 알았던 터미네이터 위로 세월의 더께가 쌓이는 모습은 안쓰럽고 아련하다. 러닝 타임 내내 치고받는 오락 영화지만 사유를 유도하는 사색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이유는 1편부터 이 영화를 지킨 아널드 슈워제네거 덕분이다.

"늙었지만 쓸모없진 않다"는 건조한 기계음은 긴 여운을 남긴다.

'터미네이터2'에서 자유자재로 형체를 변신하는 '액체 인간' T-1000은 한국 배우 이병헌이 맡았다. 초반 20분 등장하지만 존재감이 강렬하다. 총알 세례를 받으며 성큼성큼 다가설 때는 심장을 조여온다.

터미네이터들의 건조한 유머는 액션으로 가득 찬 영화에 숨통을 터준다. T-800은 사라 코너에게 "카일과 아직 짝짓기를 안 했느냐"고 묻는다. 미래에서 온 존이 카일에게 "당신이 내 아버지"라고 말할 때는 폭소가 터진다.

스토리라인이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본 적이 없다면 영화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이선희 문화부 기자]



우리 사회의 정의를 묻는 영화 '소수의견'
따뜻한 휴먼 수사물 '극비수사'
14년만에 돌아온 '쥬라기 월드'
실감나는 대지진이 온다 '샌 안드레아스'
끝내주는 액션 매드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