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아이디어 떠올랐는데, 특허 출원 안하면 손해
2016.04.07 15:02 l 표철민
고2 때인 2002년 처음 출원한 특허는 휴대폰에 앞으로 카메라가 기본 탑재된다는 생각으로 폰 카메라로 상대방 폰 배경화면에 출력된 QR코드나 텍스트를 찍으면 상대방의 전화번호 등 연락처 정보가 교환되는 특허였다. 그때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으며 앞으로는 폰의 기능이 다양해지며 디지털카메라가 없어진다는 전망이 있었다. 그래서 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질 때를 대비해 문자 인식이나 QR코드 인식을 통한 정보교환 방식을 고안해 낸 것이었다. 이 특허는 나중에 등록되는데 지금은 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소멸됐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PC 화면에 QR코드가 노출되면 이를 폰으로 촬영해 다음달 폰 요금에 합산돼 나오는 결제 방식을 고안해 특허로 냈다. 내 특허는 2003년 바로 공개됐는데, 2004년 공개된(그러나 출원은 나보다 조금 빠른 2002년에 된) 동일 특허가 있어 거절됐다. 굉장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라고 보았는데 결국 10여 년이 지난 2014년 신한 앱카드에 의해 상용화됐다. 화면에 결제용 QR코드가 뜨고, 이를 폰으로 찍으면 결제가 진행되는 내용이다.
나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지만 10년이 지난 시점에 내가 생각한 것들이 정확히 세상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재미있어 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요즘도 시간이 되면 10년 뒤에 필요할 것들을 고민하는 훈련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위자드웍스를 창업하고 나서는 주로 위젯을 스마트폰이나 IPTV에서 출력하는 것에 관한 특허를 몇 건 냈다. 이는 등록이 되기도 했는데 위젯 자체가 스마트폰 앱이나 TV용 앱으로 대체되면서 큰 의미가 없어졌다. 이후 솜노트를 만들면서는 사용자끼리 자기 노트를 사고파는 노트 거래소 모델 등을 특허로 냈고 현재 공개돼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용 키보드에 입력되는 키워드를 활용해 키워드 광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과 관련돼 2년 동안 특허를 10건 가까이 냈다. 나는 당연히 이 분야에 내가 유일한 고안자라고 생각했는데 내 특허가 공개된 지 1년 정도 지나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한 다른 회사가 비슷한 특허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역시 하늘 아래 나만 아는 아이디어는 없고, 누가 빨리 사업화하거나 빨리 지적재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일단 당장 회사를 차리거나 시장에 낼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빠르게 특허나 실용신안으로 권리 확보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특허가 반려될 가능성도 작지 않지만 적어도 출원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중에 소송 등 권리 공방전에 갔을 때 유리한 입지에 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빨리 노력하는 편이 중요하다고 본다.
위자드를 하면서 우리가 오래전부터 여성용 생리 앱 분야 1위인 '매직데이'를 운영해왔는데, 이 앱의 리뉴얼을 고려하며 고안한 아이디어도 특허로 출원했던 적이 있었다. 제휴된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체온 센서가 달려 있는 경우 여성의 기초 체온을 주기적으로 측정해 생리시작일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는 특허청에 의해 인간의 생체정보나 생리 현상을 특허로 규정할 수 없다는 조항과 미국에 있던 유사 선행 특허로 인해 거절 통보를 받았다. 거절을 자주 받으면서도 특허를 내는 까닭은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경쟁사들로부터 내 아이디어를 일정 기간 보호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최대한 조사를 하지만 해외에 유사 특허가 있는지는 막상 특허청이 심사를 해보기 전에는 답이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가끔 특허청도 잘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내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시작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나 기능에 대해서는 특허 출원을 해놓는 것만으로 시간을 벌어줄 가능성이 있다.
경쟁사들은 내 출원 사실을 알면 이 기술을 우회할 방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며 사업을 포기하거나 계획을 변경할 가능성도 있다. 특허는 출원 후 등록이나 거절 결정이 나기까지 길게는 2~3년 걸리기 때문에 설사 거절된다고 하더라도 2년 이후에나 알 수 있다. 따라서 경쟁사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출원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쟁사들에는 두려운 해자가 될 수 있다.
둘째는 중소기업의 경우 부수적인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받을 때나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때에도 특허 보유 건수가 정량적인 점수로 반영된다. 물론 등록된 특허의 점수 비중이 크지만 출원 특허도 일부 반영된다. 따라서 특허 출원 건수가 많은 회사는 점수도 높고 이 회사가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라 평가돼 부수적인 지원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다. 따라서 특허는 꼭 등록받으려고만 내는 것이 아니다.
셋째는 특허를 내면서 아직 아이디어뿐이던 것을 훨씬 구체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아직 생각밖에 없던 것을 특허 문서로 정리도 해야 하고, 도면도 그려야 하고, 기존 특허들과 다르게 머리를 잘 써서 기술적 진보성도 확보해야 하므로 그런 노력을 해가며 내 아이디어가 빠르게 고도화된다. 그럼 애매했던 부분이 특허 한두 건을 내면서 비교적 명확해진다. 그렇게 명확화한 아이디어는 특허 출원 후 사업화로 넘어갈 때에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 따라서 회사나 기업가가 특허와 실용신안, 상표 등 지적재산 확보를 생활화하는 태도는 사업 자체에도 도움이 된다. 단지 권리 선점만을 위해 기백만 원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비 창업자 또는 창업자가 새로 생긴 아이디어를 특허로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한국 특허청이 운영하는 키프리스(kipris.or.kr)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는 검색엔진이 아주 잘되어 있어 자기 아이디어의 주요 키워드로만 검색하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모든 특허와 실용신안, 상표 등의 정보가 다 뜬다. 등록된 것만 뜨는 것이 아니고 거절된 것, 소멸된 것도 모두 떠서 나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누가 처음 지적재산권화했는지, 그게 왜 무슨 이유로 거절됐는지, 등록됐다면 얼마간의 기간을 거쳐 어떻게 등록됐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키프리스와 친해지는 연습을 해야 지적재산권 확보를 생활화할 수 있다. 처음에는 용어 같은 것들이 낯설 수 있으나 한글로 되어 있고 일반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익숙한 검색엔진처럼 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키프리스를 통해 내 아이디어가 기존에 아직 공개된 특허가 없는 거의 유일한 아이디어라는 판단이 들면 변리사나 변리사가 속한 특허법인을 통해 출원을 시도할 수 있다. 물론 직접 명세서 쓰는 법을 배워서 출원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처음에는 아직 특허 명세서의 문법과 작성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등록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비용이 들더라도(2016년 현재 건당 150만~200만원) 변리사나 특허법인을 통하는 것이 더 나은 특허를 빨리 쉽게 만드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괜히 전문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나 군인, 중소기업 등이라면 관납료를 크게 할인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위에서 소개한 변리사 비용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료에 가깝게 특허를 출원할 수 있다. 물론 출원 특허가 등록되면 변리사는 성공 보수로 출원료를 다시 한번 받게 되지만 관납료는 역시 아주 낮은 수준이 유지된다. 따라서 중소 벤처기업이나 학생일 때 특허를 많이 내면 이득이 된다.
상표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지적재산권이다. 나는 신규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관련 브랜드의 도메인(인터넷 주소)을 확보하는 일이고 그다음으로는 특허, 그리고 출시가 가까워지면 로고나 브랜드에 대한 상표를 먼저 내고 출시한다.
수년 전에 티몬의 상표권을 경쟁사가 가지고 있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렇듯 사업 시작 후에도 상표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 악의적인 상대에게 막대한 상표권료를 지불하고 되사와야 할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제품 출시 전이나 제품명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전에 상표로 보호해 놓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시가 임박하면 너무 바빠 아무도 신경 쓰지 못하게 된다. 이때라도 대표만큼은 꼭 꼼꼼히 챙겨서 회사의 권리를 미리 보호해야 한다.
최근에도 나는 휴가를 가서 제대 후 할 만한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를 내고 왔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것들은 다 투자다. 실제 그 사업을 할지도 모르고, 실현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3~14년 전에 휴대폰에 카메라가 기본 탑재될 것으로 상상하고 QR코드 관련 특허를 낸 것도 마찬가지로 막연한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
내가 좀 더 관심 있게 보고 실현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미래에 베팅하고 내가 권리를 조금이라도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결코 허황되거나 무의미하지 않다. 나는 회사를 하면서 과거의 특허들 덕분에 끊임없이 크고 작은 혜택을 얻었다. 심지어 대학 다닐 때는 고등학교 때 낸 특허 덕에 특허청에서 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다. 군에 있는 동안에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미래를 상상하고 나만의 해자를 파놓지 않으면 미래의 나에게 몹시 미안한 상황이 될 수 있다.
남은 군 생활 동안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내 시간이 되는 한 미래를 상상하며 지적재산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혹자는 내가 특허를 냈다고 하면 그걸로 얼마를 벌었느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특허를 내서 사용료를 받거나 매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적재산을 확보한다는 것은 그런 눈앞의 투자 대비 수익(ROI)을 보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아주 작은 지분을 미리 확보하는 일이다. 설사 내가 잘못 찍어도 나는 미래를 읽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효과가 있으며, 만약 잘 찍을 경우에는 그 사업을 하거나 적어도 그 권리를 바탕으로 다른 가치 있는 권리나 자산과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지적재산은 사업가는 물론이요, 사실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미래는 언제나 그렇듯 금방 올 것이고, 그때도 우리는 무언가를 항상 구매하고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작은 것 단 하나라도 내가 만든 것이나 내가 생각한 것이 없다면 좀 서러울 것이다.
▲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