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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마약과 전쟁한다더니 … 법정에선 '솜방망이'

박민기 기자

입력 : 
2024-02-27 17:55:03
수정 : 
2024-02-27 20: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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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약사범 급증했지만
1심 징역형 절반 집행유예
5년동안 오히려 비중 늘어
초범에 특히 관대한 처벌
'한번은 봐준다'는 인식 안겨
"국민 법감정과 괴리감 커
양형기준 무겁게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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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법원이 '마약사범 엄중 처벌' 기치를 내건 지 약 1년이 지났지만 마약사건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진행된 마약범죄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피고인 수는 꾸준히 증가세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마약사건을 다루는 법조계 잣대가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해 '마약범죄 척결'이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중 집행유예로 풀려난 비중은 매년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2018년 징역형 3920건 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는 1603건에 달했다. 이후 마약사범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례는 매년 증가해 2021년부터는 2000건을 넘어섰다.

2019년에는 징역형 4237건 중 집행유예 1722건, 2020년에는 3904건 중 1677건, 2021년에는 4800건 중 2176건, 2022년에는 4589건 중 2074건을 기록했다.

마약 전력이 있는 재범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여전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2일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20대 여성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텔레그램을 통해 향정신성의약품인 디메틸트립타민(DMT)의 원료가 되는 식물인 미모사를 매수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과거 대마초 전력이 있는 재범자였다.

그는 2022년에도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됐는데 당시 검찰의 조건부 기소유예로 처벌을 피했다.

A씨가 이날 미모사 매수 혐의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것도 앞서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통상 법원은 형을 정할 때 양형기준을 따르는데, 기소유예는 전과로 안 보기 때문에 최소 집행유예 전력이 있어야 범죄자가 재범 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판부는 "사회적 유대관계가 나쁘지 않아 보이고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이번에 한해 집행유예를 하니 다시는 이런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라"고 밝혔다.

마약의 중독성과 재범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처음부터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일반적 법감정과 달리 검찰과 법원의 시선은 좀 더 관대하다. A씨가 처음 대마초 흡연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것이 그런 차이를 보여준다. 일반인에게 대마는 큰 일탈로 여겨지는데 검찰은 법원 판단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법조 관계자는 "국민이 봤을 땐 범죄가 맞지만 중대 범죄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검찰이나 법원에선 경중을 가려 처벌할 수밖에 없다"며 "마약범죄가 그만큼 일상화됐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초범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마약 근절 목표와 상치된다는 점이다. 한두 번쯤 마약을 해도 형을 살지 않는다는 인식이 뿌리내리면 마약으로 가는 문턱이 더 낮아지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장두식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초범이라도 가담 정도에 따라 실형 선고 등 엄벌에 처할 수 있는 형태로 양형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준 법무법인 서연 변호사는 "매매·알선 등 단순 일회성 투약을 넘는 범죄행위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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