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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람으로 '참호' 파는 CEO … 손쉽게 '황제연임' 길 터

채종원 기자

한우람 기자

입력 : 
2023-01-31 17:41:26
수정 : 
2023-01-31 20: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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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수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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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금융지주 등 소위 소유분산기업들은 현직 최고경영자(CEO) 임기 만료 시기가 올 때마다 연임 관련 잡음이 계속됩니다. 소유분산기업에서 계속되는 현직 CEO의 '참호 구축'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0일 열린 금융위원회 신년 업무보고에 참석한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같이 말하면서 소유분산기업의 거버넌스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또 김형석 한국ESG기준원 본부장은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소유분산기업 관련 토론회에서 "국내 소유분산기업 CEO는 주로 자신이 통제 가능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참호를 구축하는 형태의 대리인 문제를 초래한다"면서 부적격한 자가 CEO를 연임하는 사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두 전문가 의견대로 실제 아시아기업지배구조연합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지배구조 수준은 아시아 12개국 중 9위다.

조 교수는 "제가 사외이사를 하면서 안타깝게도 한국 지배구조 수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한다는 외국인 평가를 들어왔다"며 "국력에 비해 지배구조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국격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 지배구조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같은 한국 자본시장 저평가가 지속되고 있다는 진단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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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분산기업은 모두 ESG 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거버넌스에서는 후진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회장들이 오너가 아님에도 마치 자기 회사인 양 경영을 한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엔 이사회 역할의 부재가 거론된다. 실제 각 금융지주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이사회 활동 내용을 보면 각종 안건에 대한 가결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원안에 대해 수정 가결한 경우는 많지 않고, 안건을 반대하거나 보류한 사례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이사회가 회장 또는 CEO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경영에 제동을 걸지 않는 사례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입바른 소리를 한 뒤 사외이사 연임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이사진의 견제 역할이 부족하기 때문에 회장이나 계열사 사장 선정 과정도 불투명하다. 이사회가 곧 회장추천위원회이면서 계열사 사장추천위원회다. 즉 CEO 뜻이 각 계열사 사장 인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경영 실적에 대해 과대 홍보와 평가를 하는 경향도 결국 현직 회장 연임과 연결돼 있다. 은행권들은 지난해 고금리에 따른 이자 수익을 통해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반면 많은 금융 소비자는 높아진 금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일 때 기업들은 낮은 자세로 대응하기 마련이지만, 금융지주들은 실적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한 금융계 인사는 "실적이 좋아야 지주 회장의 성과로 포장돼 연임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이를 해석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사 내부 통제 부실화의 배경에는 경영진의 단기 업적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며 "경영진의 단기 업적주의를 차단할 제도적 장치 마련에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이 실적 홍보에는 적극 나서는 반면 정작 수백 억원대 횡령 같은 금융사고, 펀드 불완전판매와 같은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도 금융당국에서 두루 나오는 얘기다.

[채종원 기자 /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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