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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홍콩의 추락…기업도 관광객도 '헥시트'

손일선 기자

이유진 기자

입력 : 
2023-01-27 17:42:44
수정 : 
2023-01-27 20: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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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도쿄 여행객 북적, 홍콩은 코로나前 10% 수준
금융허브 위상도 흔들…경쟁력 순위 싱가포르에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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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컨설팅 회사 캡제미니는 최근 홍콩에 있던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금융 파생상품 제공업체인 멀티뱅크그룹도 홍콩을 떠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새 둥지를 틀었다. 외국기업들의 '헥시트(홍콩+엑시트)' 속도가 빨라지면서 홍콩을 상징하는 고층빌딩엔 빈 사무실이 늘고 있다. 항상 대기표를 받아야 입학할 수 있었던 홍콩 국제학교도 이제는 신입생 모집 공고를 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아시아의 대표 금융·비즈니스 허브였던 홍콩의 위상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2019년 시작된 홍콩의 중국화가 외국계 기업들의 불안감을 자극했고 최근 3년간 지속됐던 중국식 제로 코로나 정책은 헥시트를 실행에 옮기게 한 기폭제가 됐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도 이를 부채질했다는 평가다.

홍콩에 거점을 둔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은 "홍콩에서 완전히 철수할 경우 중국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도 "본사가 위기 관리 차원에서 홍콩 중심인 아시아 지역 인력을 재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고 말했다.

홍콩의 도시 경쟁력도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각국 도시 금융 경쟁력을 측정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평가에서 싱가포르는 지난해 9월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1위, 세계 3위에 올랐다. 직전 3월 조사에서 세계 3위를 차지했던 홍콩은 이번 조사에서 세계 4위로 한 단계 내려앉았다.

이 같은 흐름은 홍콩 아파트 임대료에서도 드러난다. 금융권 인사들이 주로 거주하는 홍콩 완차이 지역의 렌트비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싱가포르 핵심 지역보다 30% 가까이 비쌌다. 하지만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건너가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렌트비가 싱가포르에 역전됐다.

홍콩의 매력이 상실되면서 홍콩 인구는 3년째 내리막을 걷고 있다. 홍콩에서 다른 나라(중국 제외)로 이주한 주민 숫자가 2021년 9만8100명에 달했고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10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홍콩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은 크게 줄었다. 홍콩은 지난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2600개의 금융 취업 비자를 발급했는데 이는 2019년의 절반 수준이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는 27일 "도시봉쇄와 규제에 지친 중국 기업가들이 중국을 떠날 때 홍콩은 더 이상 선택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들이 홍콩 대신 두바이나 싱가포르 등으로 사업 본거지를 옮기는 이유는 홍콩 역시 '중국'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관광도시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달 8일 홍콩이 본토와의 국경을 개방한 이후 홍콩을 찾은 관광객은 제로 코로나 이전보다는 늘었어도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10%대에 그치고 있다.



'바늘구멍' 홍콩 국제학교 요즘은 교실이 비어간다

지난해 집값 15.6% 폭락

사무실 공실률도 치솟아



홍콩이 부진한 사이 여행객들은 다른 관광지로 몰렸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일일 입국 한도를 해제한 이후 방문자 수가 급증했다. 12월 방문객만 137만명에 달한다. 마카오에도 중국 본토 관광객이 크게 늘어 세나두 광장 등 주요 관광포인트가 붐비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헥시트는 홍콩의 많은 풍경을 바꿔놨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던 홍콩의 집값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하락한 것도 헥시트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공영방송 RTHK는 27일 "홍콩 집값이 작년 15.6% 떨어져 1998년 이래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홍콩은 좁은 땅에 인구 밀도가 높아 세계 최고 수준의 집값을 유지해왔지만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과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구가 크게 줄면서 집값이 폭락한 것이다.

주택뿐 아니라 오피스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CBRE그룹에 따르면 홍콩 고급 사무공간의 빈 사무실 면적이 지난해 10월 110만㎡에 달해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억만장자 리카싱이 소유한 청쿵센터 공실률 역시 2020년대 중반까지는 5.4%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9월에는 21%까지 치솟았다.

뉴욕, 런던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가 늘면서 공실률이 다소 증가했으나 홍콩은 그 폭이 더 컸다.

블룸버그는 "상업용 부동산 침체는 원격근무와 함께 나타난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홍콩의 경우 장기간의 봉쇄가 외국 기업과 본토 기업 수요를 차단해 경기 침체에 강한 최고급 타워에도 피해를 줬다"고 분석했다.

유명 홍콩 국제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펼쳐졌던 치열한 경쟁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됐다.

홍콩의 국제학교 수는 인구수 대비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아시아 금융허브이자 중국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홍콩에 외국인이 몰려들면서 국제학교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헥시트 이후 홍콩 국제학교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한국 금융사의 홍콩지사에서 일하는 한 인사는 "과거에는 줄을 서도 들어가기 힘들었던 소위 명문 국제학교가 요즘은 학생 숫자가 부족해 입학이 수월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헥시트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중국 억만장자들도 홍콩을 외면하고 있다. 과거 홍콩은 중국 부호들의 대표적인 피난처였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자 때리기에 겁을 먹은 중국 부호들이 부를 해외로 이전하면서 중국화되고 있는 홍콩 대신 싱가포르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홍콩 대신 싱가포르를 피신처로 삼는 중국 부호가 크게 늘면서 싱가포르에서 부호들의 가족 자산을 운영하기 위한 패밀리오피스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컨설팅 기업인 IQ-EQ아시아에서 패밀리오피스 설립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마이클 마콰트는 "중국 고객의 문의 건수가 지난해 10월 제20차 공산당 대회 이후 두 배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이미 홍콩 민주화 시위 이후인 2021년에도 싱가포르 내 패밀리오피스 숫자는 전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이후 중국 고객들의 수요가 더 커진 것이다.

자산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싱가포르로 이주하는 중국인도 늘어났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벤틀리 87대와 롤스로이스 78대가 싱가포르에 신규 등록돼 2019년과 비교할 때 각각 26%, 90% 증가했고 싱가포르의 골프 회원권 가격도 치솟고 있다"며 "이는 싱가포르로 건너온 중국 부호들이 지갑을 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베이징 손일선 기자 / 서울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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