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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송성훈칼럼] 공짜 점심의 유혹

송성훈 기자

입력 : 
2023-10-04 17:32:47
수정 : 
2023-10-04 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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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지표 호조에도 금융요동
유례없는 현상에 전망 엇갈려
공짜점심은 없다는 전제하에
경제팀 정책 부작용 최소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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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로 보는 경제가 혼란스럽다. 진단도 전망도 속 시원한 게 없다. 3일(현지시간)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치를 뛰어넘을 정도로 좋게 나왔지만 뉴욕 증시는 되레 급락했다. 뜻밖의 경기 호조라는 재료였는데도 이보다는 과열을 막기 위한 금리 인상 카드 우려에 시장이 더욱 주목했다.

국내 경제도 그렇다. 4일 통계청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8월 산업 통계들이 일제히 증가세로 반전했다고 발표하고, 9월 수출도 바닥을 찍고 돌아섰다고 했지만 금융시장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실물 경제지표가 최근 튀어오르는데, 금융시장은 거꾸로 요동친다. 이럴 때면 경제학자들이 많이 쓰는 단어가 있다. '뉴노멀(New normal)'과 '인더롱런(In the Long Run·장기적으로)'이다. 뉴노멀은 새로운 경제 질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솔직히 분석하기 힘들다"는 토로라고 보면 맞을 때가 많다. 인더롱런도 우리말로는 '결국은' 또는 '언젠가는' 정도로 풀어볼 수 있는데, 현재로선 경제를 예측하기 어려울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장기적으로는 모두 다 죽고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비판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며칠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경제 상황만 보면 지출을 줄여야 할 상황인데 미국인들은 오히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소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 경제적 상식으로는 분석이 힘든 뉴노멀 현상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대출 금리가 종전보다 여전히 2~3배 높아졌는데도 대출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종전엔 볼 수 없던 일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비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미국인들 심리가 작용했고, 집값이 반등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주택담보대출이 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례적인 상황이다. 상당수 경제학자는 뉴노멀이고, 장기적으로 결국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고 분석한다.

당장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선 이처럼 하나 마나 한 분석이 답답하다. 하지만 경제학에는 한 가지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free lunch).'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갯속 경제도 어렴풋이 손에 잡힌다.

전 세계 경제는 현재 미국의 과도한 금융 정책에 꽉 잡혔다. 급격한 돈풀기에 미국 경제가 과열됐고, 후유증이 커지자 뒤늦게 진정시키겠다고 유례없는 긴축 정책(금리 인상)에 나섰는데 후폭풍을 전 세계가 뒤집어쓴 형국이다.

정부도 뉴노멀이나 인더롱런보다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실패가 적다. 당장은 얇은 얼음판 위에 서 있는 금융시장 대처가 최우선이다. 모처럼 기지개를 켜는 실물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변수가 됐다.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고금리 상황은 고정 변수다. 사람으로 치면 고혈압 상황이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를 유지할 텐데, 거시경제 전반적으로는 커다란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격이다. 고비용 사회가 그만큼 길어진다는 의미다. 사실 고물가는 전 국민에 대한 증세나 마찬가지다. 이보다는 대출받은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영향을 주는 고금리 정책이 효과적이다. 시한폭탄이 될지 모를 가계부채라는 커다란 풍선에 구멍을 조금씩 미리 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추경 요구가 커지겠지만 정부는 지금처럼 버텨줘야 한다. 특정 지역, 특정 사업에 대한 밀어주기가 될 추경은 물가 인상과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 입장에선 사실상 증세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현 경제팀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뉴노멀 상황, 언제일지 모를 균형을 기대하기보다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로 접근할 때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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