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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앙은행 자산도 고금리 부메랑…스위스銀 116년만에 최대 적자

김덕식 기자

입력 : 
2023-01-16 17:34:34
수정 : 
2023-01-16 20: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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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 등 보유자산 환손실
금리상승에 채권가격도 급락
작년 176조원 손실 'GDP 18%'
연방정부에 배당금 지급 중단
은행예금 이자비용 감당 못해
캐나다·스웨덴 손실액 눈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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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이는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역대급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물가 상승세를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편 것이 부메랑처럼 보유 자산 가치 하락으로 돌아온 탓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경로를 오판한 데 따른 책임 논란도 잇따르면서 정책 신뢰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지난 9일(현지시간) 긴급 공지문을 통해 작년 한 해 1320억스위스프랑(약 176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1906년 SNB가 설립된 이래 116년 만의 최대 손실이라고 CNBC는 전했다. 같은 해 스위스의 예상 국내총생산(GDP) 중 18%에 해당하는 규모다. SNB는 2021회계연도에 260억스위스프랑의 이익을 냈다. 이전에 기록한 최대 손실은 2015년의 230억스위스프랑이었다.

지난해 발생한 손실 중 99.2%를 차지하는 1310억스위스프랑은 SNB가 보유한 유로화 등 외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 손실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기 침체 우려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스위스프랑 수요가 늘면서 스위스프랑이 초강세를 보였고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화 가치는 하락했다. CNBC에 따르면 2015년 유로화 페그제(고정환율제)를 폐지한 뒤 스위스프랑은 줄곧 1유로 미만에서 거래돼 왔으나 지난해 6월 이후 1유로를 넘겨 거래되고 있다.

SNB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블룸버그는 "SNB의 배당금 지급 불가 방침은 은행 설립 이후 이번이 두 번째"라며 "은행은 지난해 연방정부와 자치정부에 60억스위스프랑 규모의 배당금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SNB의 배당금 미지급으로 26개 자치구 행정부 다수의 예산 조정도 불가피해졌다. 한 자치구 재무 책임자는 스위스 현지 언론에 SNB의 손실과 배당금 미지급과 관련해 "유감스럽다"면서도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이미 예상했던 수순"이라고 말했다.

스위스프랑 강세로 보유 외화 가치가 추락하고, 금리 인상으로 주식과 채권 손실이 커진 것이 SNB가 적자로 전환된 배경이다. 블룸버그는 "SNB의 이번 적자는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물결이 중앙은행의 금융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에 따른 재정 결과를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불운의 사례는 스위스에 그치지 않는다. 캐나다 중앙은행 역시 손실 위험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캐나다 연구기관인 호우연구소에 따르면 캐나다 중앙은행은 향후 2~3년간 손실액이 36억캐나다달러에서 88억캐나다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트레버 톰베 캘거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뉴스에 "손실 규모를 정하는 결정적 요소는 금리"라고 말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작년 3분기에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5억2200만캐나다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에는 8억1400만캐나다달러의 이익을 얻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재무 보고서를 통해 자산에 대한 이자 수익이 금리 상승으로 증가한 은행 예금의 이자 비용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 손실과 관련해 톰베 교수는 "중앙은행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캐나다 중앙은행도 SNB와 유사하게 이익금을 연방정부에 송금했다. 2021년에는 1600억캐나다달러를 연방정부에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질이 예상된다.

지난 1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웨덴 중앙은행 역시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라 810억스웨덴크로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스웨덴 중앙은행도 금리 인상에 따른 자산 가치 훼손이 손실의 원인이었다. 폴리티코는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강타하면서 중앙은행은 자신이 보유한 강력한 정책 도구인 금리를 활용해 물가를 길들이려 노력하고 있다"며 "금리 상승은 그들이 대량으로 구입한 채권 가치를 날려 보내면서 중앙은행에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예상 손실에 대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ECB 고위 인사인 울리히 빈드세일 시장인프라 및 결제 담당 이사는 최근 팟캐스트에 출연해 "앞으로 잠재적 손실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우리가 매우 좋지 않은 해를 맞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센터(CEPS) 연구원은 "금리가 3%로 상승하고, ECB가 적극적으로 자산을 매각하지 않으면 유로시스템은 향후 9년 동안 6000억유로의 손실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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