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기료 40일째 우왕좌왕
에너지 정책이 방향성을 잃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 개입이 꼽힌다. 문재인 정부가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전기요금을 줄곧 동결하면서 본격화된 '에너지의 정치화' 현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초 전기요금은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에서 인상 요인 등을 보고받은 뒤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결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당정협의를 통해 여당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금 결정에 '정무적 판단'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실제 올해 2분기 전기·가스요금 발표를 앞둔 3월 29일 당정은 협의 후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최적의 해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틀 뒤 두 번째 당정협의를 한 뒤에는 돌연 요금 인상 계획을 보류했다. 산업부가 두 자릿수 인상 계획안을 제시했지만 여당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요금 결정이 늦어지는 사이에 한전 재정난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전 차입금은 올 들어 현재까지 9조4000억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2020년 4조1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21년 12조3000억원, 지난해 42조6000억원으로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실적이 악화되니 빚만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차입금 중에서도 회사채(한전채) 발행은 증가하고 있다.
신용등급 최상위 AAA급인 한전채가 늘어나면 지난해 '레고랜드'발 자본시장 경색 때처럼 자금 쏠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발행사)의 자금 조달에 차질이 발생하고 자본시장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올 들어서만 이미 한전은 4월까지 10조원가량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에 따른 이자도 상당하다. 지난해 말 기준 하루 이자가 38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는 4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한전채 발행 추이를 볼 때 한전의 비용 부담은 채권 발행 확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전채가 발행될 때마다 시중 자금이 대거 몰리는 상황은 되풀이되고 있다. 8일 진행한 한전채 입찰에는 조 단위 자금이 몰려들었다. 2년과 3년 만기에 각각 1조1200억원, 4900억원이 응찰해 2700억원, 1300억원이 낙찰됐다. 발행금리는 각각 3.88%, 3.85%로 결정됐다.
온기운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대표는 "전기요금이 '정치요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에너지 정책의 정치화가 심각하다"며 "정책당국이 물가·민생 안정을 위해 가지고 있는 전기요금 인상 유보 권한이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정과 관련해 "최종적으로 당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발언한 점에 대해서는 "요금 결정을 정치권에 떠넘기는 것은 '시장 메커니즘'과 완전히 동떨어진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송광섭 기자 / 강봉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