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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97% 폭락' 美은행주에 뭉칫돈 … "포모 조급증 벗어나야"

차창희 기자

강민우 기자

입력 : 
2023-04-30 17: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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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닮아가는 개미들
위험 감수하고 '하따' 뭉칫돈
SG證사태로 하한가 속출하자
일주일새 3천억어치 순매수
"안 망하면 반등" 심리 작용
사진설명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지역 은행주 저가 매수에 나선 개미들의 급락주 매수세는 올해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SG증권 사태 관련 8개 종목이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자 개미들은 반등을 노리고 3000억원가량 사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증권업계에선 "개미의 헤지펀드화"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레버리지 배율이 3배에 달하는 미국 증시 상장지수상품(ETP)도 개미들의 순매수 상위 종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개인투자자들의 3배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순매수액은 1조원을 훌쩍 넘었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G증권 사태와 관련된 8개 종목이 첫 하한가를 기록한 4월 24일 이후 개인투자자들은 해당 8개 주식을 총 2977억원어치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삼천리(771억원), 다우데이타(598억원), 하림지주(439억원), 서울가스(308억원), 대성홀딩스(298억원), 세방(275억원) 등의 순이다. 저가 매수세가 몰리면서 해당 종목들 거래량은 평상시 대비 크게 폭증했다. 대성홀딩스와 선광의 지난 28일 거래량은 직전 거래일 대비 각각 82배, 44배 증가했다.

하루 동안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요동치고 있지만 개미들은 매수세를 멈추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대성홀딩스는 지난 28일 장 초반 하한가(-27.8%)까지 시세가 떨어졌다가 이내 상한가(28.1%)에 근접하기도 했다. 하루 시세 변동률이 70%에 달하는 셈이다.

주가가 반등하기 직전 매수한 투자자들은 수익을 냈겠지만, 하한가 따라잡기에 나선 상당수 투자자는 큰 손실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개미들의 과감한 매동(매매동향) 행보로 인해 증권업계에선 "헤지펀드 모습을 닮아간다"는 평가가 나온다. 헤지펀드는 고수익을 목적으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PEF)를 뜻한다.

소위 '하따(하한가 따라잡기)'로도 불리는 개미들의 투자 방식은 성공 시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실패하면 큰 손실을 입게 될 위험성이 높다. 대부분 급락하는 종목들은 악재가 발생해 펀더멘털이 훼손됐고 방향성 매매에 중요한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이 물량을 정리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개미들은 미국 증시에서 3배 레버리지·인버스 상품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심지어 채권 투자도 3배 레버리지 상품으로 하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세이브로)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국채 3배(TMF)' 상장지수펀드(ETF)를 3억4118만달러(4575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그 밖에 나스닥100지수의 일일 수익률을 역으로 3배 추종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숏 QQQ(SQQQ)' ETF도 2억2763만달러(3052억원)어치 사들였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 블룸버그 천연가스(BOIL)' ETF도 8920만달러(119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올해 나스닥지수가 상승하면서 SQQQ ETF는 연중 47% 하락했다. 천연가스 가격은 급락하면서 BOIL ETF는 76% 떨어졌다.

레버리지·인버스 투자는 단기 헤징(위험 회피)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정론이다. 예측한 방향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갈 경우 레버리지 배율이 높은 만큼 손실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음의 복리 현상에 따라 시장이 횡보할 때에도 손실이 쌓이게 된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레버리지 ETF의 문제점은 하방에 대한 방어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방향을 맞추더라도 시점을 맞추지 못한다면 짊어지는 리스크 대비 리턴이 매우 낮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개미들의 투기성 투자 행태에 대해 과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한탕주의와 상승장에서 혼자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즉 포모(FOMO)증후군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노동가치가 갈수록 떨어지고 부동산 시장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자산 시장을 통해 계층 상승을 원하는 개인들이 위험자산으로 접근한다"며 "계층화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상황을 뒤집기 위해 '뭐라도 시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현실이 한탕주의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봉 삼성증권 SNI법인전략담당 이사는 "개인투자자들은 분산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며 "투자 실패의 최대 이유는 자기 과신으로 남들이 하면 따라가는 포모 증상도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위험 투자 성향에 대해 국가별 비교 연구를 해보면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가 높은 편"이라며 "투자 문화가 펀드 등 간접투자보다는 직접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려는 경향이 강해 더욱 고위험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위험 주식 비중을 일부 가져가는 건 괜찮지만 포트폴리오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제러미 시겔 와튼스쿨 교수는 과거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위험자산 투자에 대해 "10~15% 비중만 담는 건 괜찮다"고 언급했다.

[차창희 기자 / 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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