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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동학개미 목소리…최대규모 자사주 소각 줄이어

강민우 기자

입력 : 
2023-04-18 17:26:06
수정 : 
2023-04-18 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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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자사주 소각 벌써 2조
현대차·KB금융·크래프톤 등
작년에 비해 2.6배 넘는 규모
발행 주식 수 줄어 주가 상승
"국내기업 주주환원 아직 미흡
자사주 활용방안 규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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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회사인 크래프톤은 지난달 말 자사주(1679억원)를 소각하겠다고 공시해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통상 성장을 더 중시하는 게임회사는 주주환원보다 투자에 자금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크래프톤 외에도 게임주들은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등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낮아진 주가로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진 영향이 크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2020년 1조1608억원에서 2021년 2조5408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3조1356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현재까지 추세를 고려하면 자사주 소각 금액이 전년 규모를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분기만 놓고 보더라도 자사주 소각 금액이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별로 자사주 소각 규모를 살펴보면 지난 1월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현대차가 3154억원으로 가장 금액이 컸다. 메리츠금융그룹(지주·화재·증권)이 3885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밝힌 데 이어 KB금융(3000억원) 하나금융지주(1500억원) 신한지주(1500억원) 등 금융사들의 자사주 소각이 두드러졌다.

이 밖에 SK가 지난해 매입한 자사주 1006억원어치를 소각했고 KT(1000억원) 미래에셋증권(886억원) 등도 자사주 소각에 나섰다.

동학개미 열풍을 타고 개인주주들이 늘어난 데다 올해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도 거셌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ESG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의 일환으로 주주환원에 더 적극적인 것도 한몫했다. 특히 주주환원 중에서도 일회성 배당보다 지속적인 주주가치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소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자사주 매입·소각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들과 나누는 방식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 주식 감소에 따라 주당순이익(EPS) 등 주당 가치가 높아진다. 자사주 매입이 소각까지 이어지면 발행 주식 수가 감소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KB증권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개된 주주 행동주의 운동은 2020년 10건에서 지난해 47건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를 돌아봐도 7대 금융지주와 KT&G 등이 주주가치 극대화를 표방한 행동주의 펀드의 목표물이 됐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목을 받은 이후 시장의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며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주주환원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해외 주식시장과 비교해 주주환원 수준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주환원 수준에서 주요국과 격차가 현저해 국내 기업이 저평가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해외에서는 자사주 매입은 곧 소각인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자사주를 지배력 강화 등 최대주주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적분할 시 존속 법인의 자사주에 신설 법인의 신주를 배정해 지배력을 높이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나 자사주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는 최근에도 문제가 됐다. 또한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우호 세력에게 자사주를 넘기는 방식으로 자사주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이 2015년 1월부터 작년 상반기까지 발표된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를 분석한 결과 85.6%가 '주가 안정'을 취득 목적으로 제시했지만 처분 시 자사주를 주가 안정을 위해 활용한 사례는 3.6%에 불과했다. 임직원 성과 보상(34.5%)과 주식매수선택권 행사(26.9%)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일각에서는 자사주 지분만큼은 시가총액 산출에서 제외하는 미국처럼 기업들의 자사주 활용을 적절히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지배주주 이익을 목적으로 자사주 처분에 나설 때 신주 발행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절차적 통제가 필요하다"며 "자사주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는 만큼 시가총액에서 제외하고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주식 취급을 하는 것이 맞는다"고 설명했다.

[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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