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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기요금 못올리면 23조 물량 풀린다…'한전채 악몽' 스멀스멀

한우람 기자

차창희 기자

입력 : 
2023-04-12 17:42:58
수정 : 
2023-04-12 18: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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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요금 이르면 내주 발표
◆ 전기료 공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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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융시장에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지만 한국전력 이슈가 마음에 걸립니다.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근원적 해결책이 없으면 한전채가 다시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가 던진 이 같은 발언에는 전기요금을 둘러싼 정부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는 올해 2분기 이후 전기료가 추가로 인상되지 않으면 한전채 발행이 봇물 터지듯 쏟아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시장이 대내외 여건에 의해 불안정한 상태로 돌변하면 한전채발(發) 금리 급등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전개되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가계대출을 비롯한 취약 지대에서 '비명'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매일경제가 국내 한 증권사와 함께 한전 재무 상태를 점검한 결과 전기요금을 현행 수준에서 계속 동결하면 올해 한전의 부족자금 규모는 22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한전은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할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28조8000억원에 달했던 한전채 발행 물량을 올해 10조원 안팎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이 같은 정부 목표는 요금 인상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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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전기료가 유지된다면 추정 전력 판매단가는 kWh당 평균 145원이다. 이때 한전은 올해 영업이익과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각각 12조3000억원 적자와 1조3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EBITDA는 기업의 현금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적자를 기록하면 그만큼 기업 현금이 고갈된다는 뜻이다.

한전은 매년 13조원가량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다. 증권업계 추정에 따르면 올해 한전 설비투자 비용은 14조1000억원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회사채 발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이자비용이 급증하다 보니 순금융비용도 4조2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2~4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한전채 규모는 3조1000억원에 달한다. 설비투자, 순금융비용과 더불어 만기채 차환에 필요한 비용을 고려할 때 전기료 추가 인상이 없다면 한전은 올해 22조7000억원 규모 자금이 부족할 전망이다.

그동안 한전은 채권 발행으로 연료비, 전력 구입비 등을 충당해왔기 때문에 자금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면 그만큼 한전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처럼 자금시장 교란이 우려되는 것이다.

심지어 올해 2분기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의견대로 전기요금을 kWh당 38.5원(1분기 인상분 포함 시 연간 51.6원) 인상해도 부족 자금 9조6000억원이 발생한다.

이때 한전 영업이익과 EBITDA는 각각 1조8000억원과 11조8000억원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설비투자와 금융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그나마 상황은 개선된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에너지 비용이 극적으로 내려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속적인 전기료 인상은 당분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한전은 올해 들어 벌써 8조원 규모 한전채를 발행했다. 자본금·적립금을 고려한 현재 한전채 발행 한도는 103조원으로 한전의 장기사채 잔액(60조원) 수준을 볼 때 원론적으로는 약 40조원 추가 발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자본금이 쪼그라들면 한전채 발행 한도 역시 축소된다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발행 물량이 늘어나면 금리도 재차 높아질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연 5.99%까지 높아졌던 한전채 발행 금리는 올해 초 3.5%까지 떨어졌다가 현재 3% 후반대로 반등 중이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이 쉽지 않다면 사채 발행을 통한 추가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며 "고금리 한전채가 과다 공급되면 국내 채권시장 수요를 잠식했던 상황이 재현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지난해 부동산 PF 시장 불안이 '레고랜드 사태'를 계기로 폭발했던 현상이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단기적인 전기료 동결이 결과적으로는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해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우람 기자 /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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