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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키워 비싸게 되판다"…125조 PEF, 기업 구조재편 해결사로

강두순 기자

조윤희 기자

입력 : 
2023-04-09 17:49:33
수정 : 
2023-04-09 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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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 손 거치면 몸값 2.5배로
만년 적자였던 '넥스플렉스'
지난달 되팔때 몸값 5배로
CJ·LS 등 대기업 계열사도
PEF 인수 후 기업가치 상승
올해 현대百 사업부 PEF로
일각 "비용절감 치중" 회의론
◆ 기업 되살리는 토종PEF ◆
사진설명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가 2018년 연성회로기판(FPCB) 소재 업체 넥스플렉스를 10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당시 SK이노베이션의 연성동박적층판(FCCL) 사업부에 속해 있던 넥스플렉스는 만년 적자 상태였다.

스카이레이크는 FCCL 사업 성장 가능성을 주목했다. 플렉시블디스플레이 시장이 커지면 핵심 소재가 부상할 것으로 보고 인수 후 투자를 늘렸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증가하고 정보기술(IT) 기기가 고성능화·소형화되면서 FCCL 수요가 빠르게 확대됐다.

2019년 690억원 수준이던 넥스플렉스 매출은 2021년 150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상각 전 영업이익률(EBITDA)도 10.2%에서 33.6%로 높아졌다. 스카이레이크는 투자 5년 만인 지난달 5300억원에 또 다른 PEF에 회사를 재매각했다.

LS그룹의 동박·박막사업부(옛 KCFT)도 PEF로 매각된 후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진 대표 사례로 꼽힌다. LS엠트론 소속이었던 KCFT는 글로벌 운용사 KKR의 손을 거쳐 2년 만에 기업가치가 4배 뛰었다. 이 회사의 핵심 생산품인 동박은 구리로 만든 얇은 금속 제품으로 전기차 등에서 음극집전체로 쓰이는 핵심 소재다.

KKR 인수 당시 3000억원이었던 회사 가치는 2년 뒤 SKC에 매각되면서 1조2000억원으로 평가됐다. 현재는 SK넥실리스로 사명이 바뀌었다.

MBK파트너스가 2022년 매각한 두산공작기계도 비슷한 경우다. MBK파트너스는 경영난에 봉착해 있던 두산인프라코어에서 2016년 두산공작기계를 약 1조1300억원에 인수한 뒤 기업 체질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디티알오토모티브에 회사를 매각하는 시점에 기업가치는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이처럼 대기업 안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사업부가 PEF로 매각된 후 5년 안팎 기간 동안 기업가치 제고에 성공해 시장에서 높은 몸값을 인정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들이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비주력 사업 정리 차원에서 내놓은 매물이 PEF의 집중 관리를 받으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안지수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주주와 경영진 사이에 이해관계 불일치로 인해 발행하는 '대리인 이슈'를 포착하고 경영진이 주주가치 극대화에 집중하도록 지배구조 개선에 집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계열로 있을 때보다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 효율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부분도 강점으로 꼽힌다. PEF가 기업 구조개편의 한 축을 맡으면서 국가 전체 산업 재편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PEF에 반도체 2차전지를 키운 대기업집단처럼 수십 년간 적자를 감수하고 미래를 내다본 투자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기업의 빠른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비효율을 제거해 탈바꿈시키는 선순환 효과는 경제 전반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경기 전망 불투명 영향 등으로 당분간 기업들의 비주력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이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PEF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올해 들어서도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홈쇼핑이 100% 보유 중이던 현대렌탈케어 지분 80%를 사모펀드 시에라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다. 또 다른 대기업집단도 비핵심 사업부 매각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PEF 관계자는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자금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마다 경쟁력 강화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사전에 이런 고민을 인지하고 구조 개편 방안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중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업 간 인수·합병과 달리 PEF는 의사결정이 빠르고 기업의 비효율을 적극적으로 찾아 대안을 제시하면서 역할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의 리더십이 젊어지면서 구조 개편과 신사업에 대한 욕구가 크다"며 "펀드를 통한 구조조정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PEF가 산업 구조 재편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과거에 비해 인식이 개선되긴 했지만 미래 투자를 소홀히 하고 비용 절감에만 집중한다는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PEF 투자가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닌 만큼 너무 장밋빛으로만 바라보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대형 PEF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풍부한 시중 유동성을 바탕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금리 인상 영향 등으로 분위기가 반전된 상황"이라며 "PEF 성장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 PEF들이 해외 기관의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두순 기자 / 조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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