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자크기 설정

기사 상세

IT·과학

부장 있는 '단톡방' 눈치 안보고 퇴장 가능해지나

이호준 기자

입력 : 
2023-02-23 17:53:00
수정 : 
2023-02-23 19:22:42

글자크기 설정

김정호 의원 통신법 개정 발의
카톡방 퇴장때 메시지 안떠
현재는 유료서비스서만 가능
과잉 입법 vs 환영 엇갈려
사진설명
카톡 팀채팅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
서울에 취업한 지 4년 된 대구 모 대학 출신 김규진 씨(가명)는 요즘 동문과 함께하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 적잖은 스트레스다. 같은 대학 출신 직장 선배와 함께 오프라인 모임에 간 뒤 초대된 방인데 50여 명이 있으며 최소 5년 이상 선배들이다. 매일 날씨를 비롯해 성경 구절, 정치 평론 등이 올라온다. 수시로 울리는 진동과 정치색 짙은 메시지가 불편해 침묵을 지켰더니 "이 방 막내는 누군데 눈팅만 하고 있나"라는 말이 돌아왔다. 슬그머니 방을 탈출하고 싶지만 초대했던 같은 직장 선배 눈치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단체대화방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가운데 국회에서 단체방 퇴장 메시지를 숨기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나왔다. 이를 두고 "조용히 퇴장할 권리"라는 환영 반응과 "과잉 입법"이라는 반응이 엇갈린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카카오톡을 비롯한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자가 대화방에서 나갈 때 '○○님이 나갔습니다'라는 퇴장 메시지를 표시할 수 없도록 서비스 회사가 기술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단체대화에 이용자 동의 없이 임의로 초대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이용자가 대화를 중단하기 위해 대화방에서 퇴장할 때 해당 이용자가 퇴장했다는 메시지가 표시돼 이용자 불편이 가중된다"며 "다른 이용자에게 알리지 않고 대화방을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취하게 하려 한다"고 제안 취지를 밝혔다.

한번 초대된 카톡 단체대화방에서 선배, 지인, 직장 상사 등의 눈치가 보여 대화방을 나가지 못하는 현상은 '카톡감옥'으로 불리고 있다. 정보기술(IT) 중소기업에서 일한 지 5년 된 권장현 대리(가명)는 "회사 특성상 선배들과 카톡방을 만들어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데 프로젝트가 끝나도 고참 선배들이 안 나가 그대로 존재하는 방이 벌써 열댓 개"라며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에게 집중될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며 "위계질서가 있는 카톡방이라면 스트레스가 더할 것이고 '불손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톡 운영 회사인 카카오에도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현재는 '톡서랍'이라는 유료 서비스 이용자만 퇴장 메시지 없이 퇴장할 수 있는 '카톡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쓸 수 있다.

반면 과잉 입법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최경진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는 "타인 권리 침해나 법 질서 위반, 범죄 등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법으로 강제할 수 있다"며 "그런데 이 법안은 단순히 '심리적 불편함'에 관한 문제다. 그런 걸 법으로 규정한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호준 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