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세계 전기차 투자 '블랙홀'… 한국 차산업 위기 직면
당초 정부는 전동화로 인해 전체 부품사의 46.8%인 4195곳이 문을 닫고, 10만8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메이드 인 아메리카' 바람으로 자동차 업계의 미국 내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부품사 축소와 인력 감축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주요 부품사의 미국 투자는 숫자로 확인되고 있다. 현대차·기아 등에 전기차 감속기와 변속장치(섀시) 등을 공급하는 디아이씨는 이달 초 미국에 1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305억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전기차를 포함한 현지 자동차 부품 제조를 위한 목적이다.
자동차용 내외장 부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연이화도 이달 초 미국 조지아주에 자본금 3000만달러(약 380억원)를 투입해 현지법인을 설립한다. 현대차·기아·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에 전동화 부품을 공급하는 에스엘도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법인에 4000만달러(약 510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미국 정부의 전동화 정책에 앞선 선제 투자에 속한다.
현대차그룹도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맞추기 위해 2025년 상반기 전기차 양산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신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짓고 있다. 이는 결국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그룹 계열사와 아진산업·세원 등 협력 부품사들의 미국 진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USMCA와 최근 시행에 들어간 전기차 충전기 세부 규정으로 전기차 산업 생태계에 포함되는 모든 부품을 미국에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 보니 전동화 전환으로 사라질 부품사 수는 전과 같은데 국내에서 늘거나 현상 유지를 해줘야 할 부품사들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유영호 자동차연구원 정책전략실장은 "코로나19 사태로 공급망 이슈가 터지면서 전동화를 계기로 한 국내 부품사의 미국 투자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며 "여기에 '유럽판 IRA'까지 등장할 경우 부품사들의 한국 탈출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각국의 공급망 재편은 기업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우리나라도 해외 자동차 기업 유치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세진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위원은 "정부의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 등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한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정책"이라며 "기존에 한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GM과 르노의 거점 확대를 적극적으로 요청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국가전략산업의 경우 세액공제율이 1%포인트 확대되면 설비투자가 대·중견기업은 8.4%, 중소기업은 4.2%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유섭 기자 / 문광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