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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너무 뜨거운 美고용시장 … 연착륙·경착륙 아닌 '노 랜딩' 급부상

최현재 기자

입력 : 
2023-02-13 17:37:42
수정 : 
2023-02-13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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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경기전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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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잠긴 파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이코노믹클럽에서 대담을 끝낸 뒤 윗옷 주머니를 정돈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미국 경기 전망에서 '노랜딩(no landing·무착륙)' 시나리오가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올해 미국 경제가 급격한 침체(hard landing·경착륙)나 완만한 둔화(soft landing·연착륙) 둘 중 하나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제3의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제가 하강하지 않고 계속 고공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연준이 긴축 기조를 예상보다 장기간 유지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며 미국 채권 금리와 달러화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고용·소비지표의 강세와 반등한 주택·자동차 수요를 지적하며 "일부 전문가가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착륙' 시나리오를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침체가 예상됐던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이어나가면서 연준의 물가 목표치(2%)를 달성하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이다. 리서치 회사 르네상스매크로의 닐 두타 애널리스트는 "무착륙 시나리오는 현실"이라며 "연준 관리들은 경제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기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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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착륙 전망의 핵심 배경은 최근 눈에 띄게 강해진 미국의 노동시장이다. 이달 3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1월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전월보다 비농업 일자리는 시장 예상치의 3배에 달하는 51만7000개 증가했으며, 실업률도 같은 기간 0.1%포인트 하락한 3.4%로 5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금리 인상으로 고용이 완만하게나마 억제되던 흐름이 한순간에 뒤집힌 것이다. 지난해 7월 52만8000개 증가한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는 같은 해 12월 22만3000개로 줄어들며 완만한 하락세를 유지한 바 있다.

마크 지아노니 바클레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전까지는 금리 상승이 고용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기 때문에 1월 고용보고서는 놀라움을 안겼다"며 "연준의 통화정책이 예상보다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용지표 호조가 임금·물가 상승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한층 커졌다. 가계 소득 상승으로 기업들이 고객에게 계속 높은 가격을 전가할 수 있는 데다, 소비 지출도 상품 부문에서 노동집약적인 서비스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일자리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월 임금상승률은 둔화했지만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더 늘면서 미국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수령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미국 노동자들의 주당 총급여는 전년 동기 대비 8.5% 늘어난 상태다.

이는 기대인플레이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의 자료를 인용해 선물시장의 1년 후 인플레이션 예측치가 기존 2.4%에서 3.9%로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이선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경제연구 책임자는 "성장이 가속화되면 인플레이션이 하락할 것이라는 데 깊은 회의감이 있다"며 "노동시장을 냉각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긴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럴듯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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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향후 1년간 경기 침체 가능성을 기존 35%에서 25%까지 낮추면서 연준이 물가 목표치(2%)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추세 이상 성장이 가속화된다면 물가상승률이 2%에 근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미 경제의 지속 성장 전망에 따라 기준금리 선물시장도 연준이 종전보다 긴축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전망을 집계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금리 선물시장은 5월 미국 기준금리가 5.25%(상단 기준)로 정점에 달하고, 이후 11월까지 금리가 동결된 뒤 12월 5%로 인하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는 1월 고용보고서가 나오기 전 시장 예상과는 크게 달라진 흐름이다. 이달 1일 기준 금리 선물시장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오는 3월 5%로 정점에 달할 것으로 봤으며, 이후 동결을 유지하다 11월과 12월 0.25%포인트씩 인하될 것으로 내다봤다.

연준을 믿지 않았던 채권을 비롯한 자산시장에도 불안 심리가 커졌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 금리는 연초 4.4%에서 이달 1일 4.09%까지 하락했지만, 1월 고용보고서 발표 전후로 급반등해 지난 10일 기준 4.5%까지 상승 반전했다.

올해 반등한 미 증시 속에서도 투자자들은 자금을 빼내고 있다. WSJ는 레피니티브 자료를 인용해 지난 6주 동안 미국 주식형 뮤추얼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총 310억달러가 순유출됐다고 보도했다. 순유출 기간으로는 지난여름 이후 최장 기간이며, 액수 기준으로는 2016년 이후 연초 기준 최대다.

WSJ는 "올해 반등은 연준이 인플레 완화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희망에 따른 것"이라면서도 "1월 고용보고서는 일부 투자자가 연준에 대한 기대를 재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전했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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