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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221시간' 어둠 몰아낸 모닥불, 희망 채워준 커피믹스

우성덕 기자

진영화 기자

입력 : 
2022-11-06 17:49:17
수정 : 
2022-11-06 19: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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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광산 생존 스토리
고립된후 100㎡ 공간으로 대피
모닥불로 물 끓이고 체온 유지
커피믹스 30봉은 허기 채워줘
자체 발파 통한 탈출 실패에도
구조대 소리 들으며 의지 다져
체력 바닥날 때쯤 극적인 구출
현장선 모두 부둥켜안고 울어
사진설명
경북 봉화 아연광산 매몰 사고 발생 9일째인 지난 4일 작업자 2명이 고립된 지 221시간 만에 생환한 것은 베테랑 광부들의 지혜와 경험, 그리고 구조대원들의 끈기와 노력이 결합해 만들어낸 한 편의 '감동 드라마'였다.

고립됐던 두 광부는 생존을 위해 매뉴얼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하며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고, 구조당국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민관군 합동 1000명이 넘는 인력과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생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6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후 6시께 선산부(작업반장) 박정하 씨(62)와 후산부(보조작업자) 박 모씨(56)가 광산 제1수직갱도(지하 190m·수평거리 70m) 지점에서 작업을 하다 펄(토사) 900t이 쏟아지는 바람에 고립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들은 매몰 당시 인근에 있던 100㎡ 규모 공간에 대피해 구조를 기다렸다. 20여 년 경력의 베테랑 광부인 작업반장 박씨는 '공기와 물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대피하라'는 갱도 고립 대비 매뉴얼을 누구보다 잘 숙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휴식시간에 먹으려고 갖고 있던 커피믹스 30봉지와 물 10ℓ가 있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갱도 내에서 비닐과 나무 막대기를 주워 비상용 텐트를 쳤고,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닥불을 피웠다.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이들은 커피포트에서 스테인리스 부분만 따로 떼어내 모닥불 위에 물을 끓여 커피믹스를 타 먹었다. 커피믹스에는 생명 유지에 필수인 나트륨과 칼로리가 담겨 있다. 동서식품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1포에는 나트륨 5㎎, 탄수화물 9g, 지방 1.6g, 당류 6g, 포화지방 1.6g이 들어 있다. 총 칼로리는 50㎉다. 성인 남성에게 필요한 하루 칼로리는 약 2000㎉다. 이 열량을 맞추려면 커피믹스 40포가 필요하지만 사흘에 걸쳐 나눠 먹은 것이 극한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영양 보충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커피믹스마저 사흘 정도 지나자 모두 소진됐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받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체온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작업자들은 서로 어깨를 맞대 체온을 유지하기도 했다.

사진설명
이들은 갇힌 갱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사고 이틀째부터 사흘째까지는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괭이를 들고 파내기도 했고, 갱도 내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탈출구를 모색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갖고 있던 화약 20여 개를 이용해 두 번에 나눠 발파를 시도했지만 그 정도 양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끔씩 나는 구조대의 발파 소리를 들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꼭 살아서 나가자"고 다짐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가올 때면 서로를 부둥켜안고 함께 울기도 했다.

구조당국 역시 일분일초를 다투며 밤낮 없는 작업을 이어갔다. 구조 기간 동안 이곳에는 1145명의 인력과 천공기 12대, 탐지내시경 3대 등 장비가 투입됐고, 육군 공병단 땅굴탐사부대인 시추대대도 기기 3대를 포함해 차량과 장비 15대를 지원하는 등 민관군이 나서 힘을 보탰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9일째 되던 지난 4일 오후 11시 6분. 고립 예상 지점까지 굴착이 이뤄졌고, 구조대원과 동료들이 고립된 갱도 내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곧이어 불빛을 든 동료 대원들이 갱도 내에 진입해 "형님" 하며 소리를 질렀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던 두 광부는 이 소리를 듣고 구조하러 온 동료와 대원들에게 향했고, 이들은 보자마자 얼싸안은 채 서로 울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구조대원들 도움을 받아 확보된 통로를 통해 스스로 걸어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사고 발생 9일째, 221시간 만에 벌어진 기적이었다. 주치의인 방종효 안동병원 신장내과 과장은 "3~4일 정도 늦었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며 "커피믹스 30봉지를 식사 대용으로 드셨다고 하는데, 그게 상당히 도움이 된 것 같고, 평소에도 체력이 꽤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안동/우성덕 기자·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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