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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년만에 외화채권 상환 연기…국내기업 해외 돈줄 마를까 촉각

한우람 기자

조윤희 기자

신찬옥 기자

입력 : 
2022-11-02 18:05:00
수정 : 
2022-11-03 20: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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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권시장 살얼음판 ◆
레고랜드 사태 후폭풍 속
영구채 실질적 만기상환 불발
韓기업 외화채권 발행에 찬물
원화 이어 외화 조달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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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패닉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외화표시채권(한국물·코리안 페이퍼)에 비상이 걸렸다.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조기상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며 한국물 시장에 ‘찬물’을 끼얹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흥국생명은 지난 1일 글로벌 투자자들을 상대로 2017년 발행한 5억달러(약 7000억원) 규모의 영구채에 대해 오는 9일로 예정됐던 조기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지했다. 흥국생명이 지난달 말 국내외 자금시장 불안으로 인해 3억달러 규모 영구채의 차환 발행계획을 연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국내 금융사가 발행한 외화채권을 놓고 조기상환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2009년 2월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금융위기 직후였던 당시 우리은행은 10년 만기 후순위채(4억달러)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

영구채는 말 그대로 만기가 이론상 영구적이다. 매년 이자만 꼬박꼬박 지급하면 만기를 무한대로 가져갈 수 있다. 채권과 자본의 중간 성격을 지녀 신종자본증권이라 불린다.

하지만 영구채는 통상 발행 뒤 5년 이내에 발행사가 콜옵션을 행사해 투자자들에게 원금을 돌려준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발행사는 투자자들에게 기존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하는 ‘패널티’가 있다. 흥국생명은 이번 결정으로 영구채 투자자에게 지급할 이자가 연 4.475%에서 연 6.742% 수준으로 껑충 뛰게 된다.

이자 지급액 증가보다 더 큰 문제는 투자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기관의 한 채권 담당자는 2일 “영구채 투자자는 만기를 ‘영구’가 아닌 5년으로 감안해 해당 채권에 투자한 것”이라며 “투자자금이 예상보다 길게 묶이는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발생한만큼 향후 흥국생명 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사 발행 영구채에 대해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금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13년 만의 ‘콜옵션 리스크’ 재발로 인해 영구채 뿐만 아니라 한국물 전반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크게 저하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결국 발행사들의 해외 조달비용이 커질 수 있다. 한 증권사 부사장은 “주요 금융지주사, 은행, 증권사들이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며 “‘스텝업(금리 인상)’을 택한 건 차환이 막혔다는 방증인데 글로벌 투자자들에게도 국내 시장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홍보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영구채 차환발행 없이 자체 자금으로 상환했을 때 손해가 너무 커 투자자들에게 추가 금리를 제공하고 시장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콜옵션 행사를 연기한 것”이라며 “유럽 금융권에서도 지난달 비슷한 이유로 콜옵션 행사를 연기한 사례가 있으며 자본건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흥국생명의 올 2분기말 기준 지급여력(RBC) 비율은 정부 권고치를 웃도는 158%다.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은 이번 흥국생명 조기 미상환건을 사전에 인지해 이해관계자와 소통해왔으며 향후 시장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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