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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단독] 年 17% 대출에 강남 아파트 집주인도 줄섰다

명지예,류영욱 기자

명지예,류영욱 기자

입력 : 
2022-10-28 17:46:01
수정 : 
2022-10-28 20: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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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우량 담보도 대출 별따기

시중은행 주담대 초과금액
2·3금융권 추가대출 막혀

LTV 80%까지 주던 대부업
이젠 한도 60%도 안나와

돈줄 막힌 집주인들 "불법사채라도 쓸 판"
20억원에 서울 여의도 소재 주상복합을 매매하려던 A씨는 선순위로 대부업체를 찾았다가 거절당하고 결국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을 고스란히 날렸다. 최근 대부업계에 접수된 19억원대 경기도 분당 서현동 아파트도 대환대출에 실패해 경매로 넘어갈 처지에 놓였다. 개인 자금을 모아 주택담보대출을 내주는 온라인투자금융(P2P) 업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14억원짜리 아파트 소유자 B씨는 이달 초 연 9.4% 금리로 1억7000만원 후순위 대출을 신청했지만 18일이 지난 지금까지 투자금을 모으지 못했다.

이처럼 서민 자금줄인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2·3금융권에서 신규 대출을 급격히 줄이면서 '초우량 담보'로 꼽히던 서울 아파트를 제시해도 대출시장에서 줄줄이 퇴짜를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급해진 정부가 내년부터 무주택자와 1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제한을 50%로 완화해 집값의 절반까지도 시중은행에서 대출받게 해주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추가 대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저축은행과 대부업권에서 대출에 난색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대부업권에서 LTV 80%까지도 자금을 융통할 수 있었으나 이번주 들어 유동성이 확 줄었다. 연 15~17% 고금리 대부상품도 없어서 못 받는 실정이다. 돈이 급한 사람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자칫 '흑자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8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저축은행 업계 1·2위인 SBI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도 이번주 들어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했다. 다만 두 곳 모두 "완전 중단은 아니고 모기지론 금리를 재조정하면서 한시적으로 중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조달금리가 급등해 대출을 해줄수록 손해인 상황"이라며 "인상된 금리를 반영해 다음달께 신규 대출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권 사정은 더 어렵다. 업계 1·2위인 러시앤캐시와 리드코프가 신규 대출을 대폭 축소했고 대출 규모 100억원 내외의 일부 중소형사만 틈새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지난주만 해도 LTV 60% 정도는 연 9~10% 금리로 자금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번주는 연 15~17%로 올랐다"면서 "그마저도 자금이 소진되면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고금리 대출에도 줄을 서야 하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러다 10억원짜리 아파트가 있어도 1금융권 4억원+α(신용대출 등)만 받고 추가 자금을 구하지 못해 경매에 넘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1금융권에서는 40% 제한에 걸려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하고 2·3금융권은 대출 영업 중단으로 대출을 못 받는 자금경색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대출금리 상한이 연 20%에 묶여 있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는 역마진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돈을 맡기는 사람 입장에서도 은행 예·적금이 연 6%대인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9%대 대부업권이나 온투업권을 찾을 이유가 없다.

소규모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한 대표는 "지금 대출을 해줘 봤자 남는 건 거의 없고 부동산 하락기에 잘못 물리면 경매로 보내도 원금 회수가 쉽지 않다"면서 "자칫 1년 이상 자금이 묶일 텐데, 차라리 쉬는 게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날 대부금융협회와 점검회의를 열고 유동성 공급 확대를 비롯해 불법 사금융 근절을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또 금융위는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들이 유연하게 은행채 발행 물량을 조정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 조치가 2·3금융권 유동성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5.15%로 조사됐다. 전월보다 0.39%포인트 오른 것으로 가계대출 금리가 연 5%를 넘은 것은 2012년 7월(연 5.20%) 이후 10년2개월 만이다. 금리 인상폭도 커 지난달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79%로 전월 대비 0.44%포인트 상승했다. 2002년 2월 0.49%포인트 오른 이후 20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올해 들어 급상승한 기준금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2%포인트 인상해 현재 3.0%를 기록하고 있다.

[명지예 기자 /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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