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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당국 대책에 AA회사채 팔렸지만…"연말까지 시간벌었을뿐"

적극 개입후 패닉 진정 조짐
한전채 6% 육박 고금리 낙찰
중진공20년물 외면받아 유찰
중소증권·건설사는 살얼음판

당국, 채안펀드 추가실탄 마련
기관엔 과도한 매도 자제 요청
은행채 일괄신고서 규제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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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 대책이 28일 일단락됐다. 지난 23일 '50조+α' 지원에 이어 27일 한국은행의 6조원 규모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카드까지 일주일간 쉼 없이 대책이 나오면서 패닉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다는 게 시장 평가다. 하지만 초우량 공사채의 발행금리는 여전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넘나들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자금난이 지속되고 있어 시장에 온기가 퍼질 수 있도록 빠르고 정밀한 정책 실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입찰이 진행된 한국전력 2년과 3년 만기 채권(신용등급 AAA)은 각각 5.9%와 5.99% 금리에 낙찰됐다. 2년물의 경우 3300억원 응찰에 2900억원이 낙찰됐고, 3년물은 1500억원 중 상당 부분인 1200억원이 낙찰됐다. 연초 발행금리가 2%대였던 한전채가 6%를 눈앞에 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한전채 발행금리가 사실상 6%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2년물과 3년물 응찰 최고금리가 각각 6.5%, 7%로 이미 6%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투자금융팀 관계자는 "한전과 정부 입장에서는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6%대 금리를 용인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늘 국고채 금리가 내리며 강세를 보인 점을 감안하면 스프레드(국고채 금리와의 차이)가 전날에 비해 더 벌어졌다"고 말했다. 즉 신용등급 최상위 공사채에 대한 시장 평가가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다는 설명이다. 관심을 모았던 교보증권 회사채는 수요예측 미달 사태를 피했다. 이날 오전에 입찰이 진행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채(AAA) 20년 만기물은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정부의 시장 안정 대책이 나온 후에도 채권·부동산 펀드에서의 자금 유출은 이어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28일 기준 채권·부동산 펀드 설정액은 일주일 새 3446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내 채권형 펀드(-2352억원), 채권혼합형 펀드(-1068억원), 부동산 펀드(-26억원) 순으로 자금 유출이 컸다. 환매 움직임에 40조원을 넘었던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39조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거시경제 불확실성 확대에 기관투자자들이 펀드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린 보험사들의 순매도세가 거센 편이다.

실제 정부와 한국은행이 지난 일주일간 자금시장 불길 진화에 나섰지만 채권시장의 매수 주체인 연기금·공제회·상호금융사·보험사 최고운용책임자(CIO)들이 바라보는 현재 시장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기만 하다.

한 보험사 CIO는 "단기적으로 극단적인 패닉 상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번 대책으로 옥석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기피되는 국면은 점차 안정되겠지만 옥석이 구분된 이후 부담이 큰 약한 고리 즉,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부담이 높은 중소형 증권사·건설사 등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험사 CIO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경우 현재 사실상 모두 중단된 상태여서 실물 분야는 여전히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부동산 PF와 연관된 만기 도래 자금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관한 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의 대책이 3개월이란 시간을 벌어준 것일 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공적연금사 CIO는 "2000년대 카드채 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을 보면 결국 위기를 촉발했던 근본 원인에 치유책들이 발표되고 단계적으로 시행되면서 비로소 시장이 정상으로 회복했다"며 "이번에도 벌어놓은 3개월간의 골든타임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 상호금융사 CIO는 "한은의 유동성 지원 기간이 3개월로 단기여서 연말·연초까지 한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준 것"이라며 "부동산 PF 우발채무 이슈가 나타나고 있는 증권사 등에는 3개월의 기간을 줄 테니 그 전에 대안을 마련하도록 신호를 줬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 조치'의 세부 대책 실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단 금융당국은 다음주 중 3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캐피털 콜'(펀드 자금 요청)을 통해 자금시장 지원을 위한 추가 실탄을 확보한다.

금융당국은 지원책뿐만 아니라 시장 분위기 안정을 위한 협조도 적극적으로 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관계부처와 함께 주요 기관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최근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중장기적인 관점에 기반한 투자 결정과 더불어 과도한 채권 매도나 채권 매수 축소 등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특수채나 은행채 등 초우량채들이 회사채들을 구축(밀어내기)하는 채권시장에 대한 관리에도 나서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은 관계 기관과 협의를 통해 공공기관의 채권 분산 발행을 추진 중이며,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채권 발행도 최소화하는 방침을 정했다. 은행채와 관련해선 이날 일괄신고서 규제 유연화 조치를 내놨다. 금융당국은 "일괄신고서상 발행 예정 금액대로 은행채를 발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 조치를 면제한다"고 밝혔다.

[강봉진 기자 / 김명환 기자 / 강우석 기자 /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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