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자크기 설정

기사 상세

경제

50조 대책에도 채권시장 살얼음판…초우량 가스公 채권도 안팔려

국채 3년물 금리 19bp 하락
회사채도 폭등세 꺾였지만
신용 스프레드는 되레 벌어져

"정책 발표만으론 효과 미미"
회사채·CP 매입 실행 시급
韓銀 직접공급 대책 주문도
PF대출 잔액 112조도 리스크
◆ 자금시장 비상대책 ◆
◆ 불안한 자금시장 ◆

사진설명
"국고채나 통화안정채권만 강세(금리 하락)를 보일 뿐 나머지 크레디트물에는 정부 대책의 효과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A증권사 채권운용 총괄) 정부가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통해 '50조원+α' 규모의 긴급 안정 대책을 내놓자 일단 '패닉'은 진정됐다. 그러나 시장에서 곧바로 약발이 들지는 않는 상황이다. 국고채나 회사채 금리는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신용 스프레드는 쉽게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용 스프레드는 국고채와 회사채 사이의 금리 격차를 가리킨다. 이 차이가 클수록 시장은 회사채 투자 위험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24일 종가 기준 국고채(3년물) 금리는 4.305%로 전 거래일보다 0.190%포인트 떨어졌다. 회사채(AA-급·3년물)도 0.144%포인트 하락한 5.592%를 나타냈다. 하지만 신용 스프레드는 오히려 1.287%포인트로 벌어졌다.

채권투자 업계 관계자는 "국고채급으로 여겨지던 산은채까지 이제 크레디트물 취급을 받는다"며 "회사채처럼 리스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얘기로, 공사채는 말할 것도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AAA' 등급인 한국가스공사 2년물의 유찰은 특이한 것이 아니다"며 "지난주 나온 모든 공사채가 유찰됐는데, 아직 상황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우량 공사채마저 시장의 외면을 받은 건 시장 심리 위축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B증권사 채권 담당자는 "지자체 보증물도 채무불이행(디폴트) 이슈가 터진 마당에 신용등급이 우량하다고 자금이 모이진 않고 있다"며 "정부 대책이 나왔지만 시장 불안 심리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결국 증권 업계는 대규모이긴 하지만 '구두 개입'성으로는 시장 안정화가 요원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실질적인 액션(자금 투입)이 이뤄진다면 효과는 나오겠으나, 이 또한 '언제냐'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C증권사 채권 담당자는 "지난주 발표된 정부의 정책 지원책 규모가 커서 심리적으론 안정이 됐지만 실제 24일 물량이 나오는 건 없는 상황"이라며 "국채는 금리가 내렸지만 단기물의 경우 오히려 금리가 올랐는데 시장에선 현재 '진짜 대책이 진행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 업계 채권 담당 연구원은 "채권 시장은 주식 시장처럼 정책 발표가 나왔다고 바로 크게 효과가 발생하진 않는다"며 "중소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시장 금리와 괴리가 크게 과매도했기 때문에 시장 불안이 높아진 건데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완화될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채 시장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신용등급 최상위에 가까운 우량 기업들이 투자자 모집에 연이어 실패하고 있다. 연기금과 보험사, 공제회 등과 같은 주요 기관들이 지갑을 아예 닫아버린 탓이다. SKT·KT와 함께 통신 시장의 과점 사업자인 LG유플러스조차 '미매각'을 기록할 정도다. LG유플러스는 19일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500억원이 미매각됐다. 만기를 2·3년으로 나눠 모집했는데, 3년물에 유입된 주문은 100억원에 불과했다. 부도 가능성이 대단히 낮은 LG 계열사가 연 5.6%의 금리를 제시했는데도 투자자를 찾지 못한 것이다. LG유플러스의 장기 신용등급은 'AA0'로 전체 신용등급 체계에서 셋째로 높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동일한 코리안리의 경우 투자자 풀이 제한적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기 때문에 미매각을 예상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LG유플러스의 회사채까지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결국 발권력을 동원한 최종 대부자로서 한국은행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금융권에서는 이번 지원책에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등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제외됐다"며 "한국은행의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 SPV 설립 등이 제외된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선 시장 혼란의 근본 원인은 매크로(거시경제) 요인인 만큼 시장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급등 기조가 완화되는 모습이 확인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말 미국의 긴축 강도가 완화되고 국내 정책 효과가 본격화될 경우 내년 초에는 시장이 안정화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 불이행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건설 업계도 '즉시 효과'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편이다. 부동산 PF 시장의 대출 규모가 워낙 커서 시장에 온기가 돌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12조2000억원에 달한다. 9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김정주 건산연 연구위원은 "민간과 정책금융기관의 공동 출자를 통해 기금을 조성한 뒤 부실 채권을 신속히 인수·처리함으로써 부실에 따른 부정적 효과가 경제 전반으로 파급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증시에서는 증권·건설사의 PF에 대한 지원 기대감에 건설업종은 2.56%, 증권업종은 1.44% 상승했다.

[김명환 기자 / 차창희 기자 / 강우석 기자 / 이석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