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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블랙홀 된 은행채…채권시장서 무슨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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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레고랜드 관련채무
내년 1월 말까지 상환할 것"

한은총재-은행장 26일 회동
시장안정 추가 대책 나올까
이달 들어 채권 발행 시장에서 은행채와 국채, 특수채(한국전력공사·산업은행 등 공공 부문이 발행한 채권) 등이 채권 시장 자금을 '싹쓸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카드·캐피털 등 여신전문금융사가 발행하는 기타금융채와 회사채는 순유출액이 이달에만 5조원을 웃돌았다. 지난 20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1조6000억원 규모의 채권안정펀드 집행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채권 순발행액은 국채 6조7174억원, 특수채 1조6325억원, 은행채 1조900억원 순이다. 순발행액은 채권 발행액에서 기존 채권의 만기 상환액을 뺀 수치로 해당 액수만큼 시장 유동성을 빨아들였다는 뜻이다.

반면 기타금융채는 2조4473억원, 회사채는 3조3214억원이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사와 일반 기업으로 갔던 5조7687억원이 빠져나가 국채, 특수채, 은행채 같은 초우량채로 쏠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은행채는 이달 들어 무려 15조2000억원어치가 발행돼 전체 채권 발행액의 41.1%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한전에 채권 발행 여력을 더 늘려주겠다는 방침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전 적자와 관련해 "일단 한전에 자금이 조달돼야 하기 때문에 한전채 발행 한도를 높이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도를 지금보다는 높여야 자금 융통을 하면서 경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한전채가 국내 시장에 교란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외에서 발행해줄 것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요청했다"고 전했다.한편 강원도가 레고랜드와 관련한 채무 2050억원을 예산 편성을 통해 늦어도 내년 1월 29일까지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강원도가 채권 시장 안정화를 위해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1일 "시장과 소통해 효과적인 유동성 공급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리 상승으로 시장 유동성이 축소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유동성 공급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전날 발표된 정부 대책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소 실망"이라며 "채권시장 안정펀드는 이미 12일에 나온 내용으로 '신속히 하겠다' 정도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6일 은행연합회에서 국내 주요 은행장 등 은행연합회 회원사 수장들과 만찬 회동을 한다. 은행연합회는 매달 넷째주 월요일 정기이사회를 진행한 뒤 한은 총재는 물론이고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경제부총리, 국회 정무위원장 등 외부 인사를 초청해 만찬을 함께해왔다. 하지만 이번 정기이사회는 이례적으로 이 총재 일정을 감안해 수요일에 열린다.

[한우람 기자 / 김명환 기자 / 김정환 기자]

알맹이 없는 채권대책에 회사채금리 더 올라
은행채 등 발행 이어지면
시장 자금 쏠림만 악순환

레고랜드 사태 영향 여전
"증권사 유동성 공급 시급
한은·증금이 급한불 꺼야"

한은총재-은행장 26일 회동
사진설명
금융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위원장 특별 지시 사항'까지 내렸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단기자금 시장 경색에 대해 시장이 팔을 걷겠다고 한 것까지는 좋지만, 이렇다 할 액션플랜(실행 계획)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신속히 투입하겠다는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 또한 지난 12일 언급했던 데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투입할 수 있는 규모(1조6000억원)도 시장이 느끼기에 충분치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아직 한국증권금융 차원에서 '언제, 어떻게' 시행할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임시방편으로, 일단 발작 수준에선 내려왔지만 안정화 단계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의미다. 특히 채안펀드 확대 방안은 최근 채권시장의 자금 '블랙홀'로 꼽히는 은행채 발행을 더욱 늘리는 구조여서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종가 기준 회사채(AA-급·3년물) 금리는 5.736%로 전날보다 0.148% 올랐다. 국고채(3년물)도 0.145% 올라 4.495%를 기록했다. 이는 자금시장 경색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국고채는 4.5%에 육박하게 됐는데, 이는 전날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의 여파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CP 금리도 올라 기업의 자금 조달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다행히 AA등급 회사채의 경우 발행 기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리 회사채를 조달해 놓은 게 있어 올해 말까지는 견디겠지만, 문제는 내년"이라며 "지금 상황이 계속되면 AA등급에도 자금 조달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금융당국 발표에 대해 김은기 연구원은 "채안펀드 규모가 크게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어제(20일) 대책은 잔여자금을 활용해 여전채(여신전문금융사채)나 일반 기업 CP를 매입한다는 데 그쳤다"며 "물론 현 상황에서 규모보다는 단기자금 시장 안정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인식과 함께 방향성 자체는 잘 잡고 있다고 보지만, 시장 기대에는 못 미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에서도 여전히 우려감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채안펀드 확대가 다시 은행채 발행을 늘리며 채권 시장의 자금 조달 악순환 구조를 만드는 만큼 결국 한국은행이 나서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증권사들이 스스로 대출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줘서 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다만 이것을 은행들을 통해 한다면 또 은행채를 발행하게 되고, 은행채가 채권 시장에서 '빨대 효과'를 내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행이나 한국증권금융과 같이 조달을 안 하는 곳에서 대출을 하게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단기자금 시장의 결정타는 강원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ABCP 사태였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된 이유는 한전채, 은행채 같은 초우량채가 시장의 자금을 모두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김은기 연구원도 "은행채와 한전채 발행이 많아 유동성이 말라가는 상황에서 나머지 채권들은 소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신용등급 리스크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 AAA급 공사채로 자금이 쏠리면서 시장이 왜곡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창용 한은 총재는 26일 국내 주요 은행장 등 은행연합회 회원사 수장들과 만찬 회동을 한다. 은행연합회는 매달 넷째 주 월요일 정기이사회를 진행한 뒤 한은 총재는 물론이고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경제부총리 등 외부 인사를 초청해 만찬을 함께해 왔다. 하지만 이번 정기이사회는 이례적으로 이 총재 일정을 감안해 수요일에 열린다.

[김명환 기자 /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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