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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매경데스크] 무너지는 신뢰, 엄습하는 마진콜

송성훈 기자

입력 : 
2022-10-21 00:07:01
수정 : 
2022-10-21 0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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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신뢰 잃을때 위기 시작
임계치 넘으면 순식간에 돌변
정책실패로 레고랜드發 혼선
선제적 조율로 신뢰 높여야
사진설명
꽤 긴 침묵을 그가 깼다. 2011년 2월, 밤 11시를 조금 넘겼을 때다. "이제 다 끝났네요. (현장에 나온) 금감원 직원이 감독원 쪽으로 팩스를 보냈다고 합니다. 영업정지 기사 보내셔도 되겠네요."

행장실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1층 객장을 내려다보던 저축은행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통장에서 돈을 빼가겠다고 객장에 몰려든 고객들에게 밤늦게까지 인출을 다 해주고 나서였다. 그는 "예금이 5000만원이 안 돼서 전액 보호를 받는데도 통장에서 돈 빼가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예금자보호제도를 충분히 알 만한 은행 퇴직임원까지 찾아갔다"고 했다. 금융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순식간에 당사자들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패닉 상태에 빠지는 모습을 봤던 그다. 뱅크런도 그 일부였다.

최근 금융시장을 우려하는 것도 신뢰 이슈 때문이다. 금융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계약과 그 이행의 과정이다. 금융위기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늘 발생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이아몬드와 딥비그 교수가 논문에서 증명해낸 내용이기도 하다.

20일 금융위원장이 특별 지시사항까지 발표한 단기자금시장 혼란도 시장 신뢰를 잃으면서 시작했다. 그것도 정부 스스로 신뢰를 깼다. 강원도가 지난달 30일 레고랜드 개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 보증을 갑자기 거부하면서다. 정부보증마저 믿지 못하니 채권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이 와중에 한전이 회사채 시장에서 이달에만 1조4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싹쓸이하고, 은행은 정부의 유동성비율 규제에 맞추려고 시중자금을 쓸어모았다. 정부에서 누군가 조율해주면 충격이 덜했을 혼란이었다.

각자도생에 나서면서 국가 간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빠른 속도로 수도꼭지를 잠가버리면서 금융시장은 대혼란이다. 현금이 마르자 주가지수와 금리는 10년 전 금융위기 수준으로 단숨에 시계를 되돌려놨고, 환율은 20년 전 외환위기 수준을 들먹일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수십 년 만에 그 수준으로 갔다고 하는 각종 수치들은 임계점을 향하는 중이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물성이 바뀌듯 금융은 순식간에 바뀐다. 위기도 이때부터다.

그중 하나가 금융거래에서의 '마진콜'이다. 금융계약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받아두는 증거금이 시장가치 하락으로 부족할 때가 있는데, 일정 수준을 채우도록 하는 약속이다. 약속을 어기면 반대매매가 자동으로 발생하면서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특히 지렛대처럼 적은 돈으로 거액 투자를 하는 파생계약이 그렇다. 평상시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위기 때면 시한폭탄으로 돌변한다. 계약 당시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임계치까지 주가나 환율, 원자재 가격이 진입해버리는 순간을 말한다.

최근 금융사 고위 임원들을 만날 때마다 두 가지를 물어봤다. 어느 지표를 가장 주목하는지, 그리고 마진콜 가능성은 없는지. 예외 없이 환율을 가장 우려했다. 그리고 마진콜 위험이 아직은 크지 않지만 상황이 벌어지면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누구는 달러당 원화값 1450원을, 누구는 1500원 선이 임계치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외환당국이 필사적으로 개입해 최대한 시간을 버는 이유다.

금융권의 한 임원은 "과거 위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마진콜을 당해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부분 보험 장치를 해놓고 있다"면서도 "다만 비용절감을 명목으로 보험을 걸어놓지 않은 계약이 혹시 있는지 몰라서 전수조사를 해보는 중"이라고 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와 맺은 금융계약서에 과거 위기가 터지면 그제서야 보이는 독소조항은 없는지도 재점검해본다고 했다.

시장이 임계치로 가면 갈수록, 그리고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기업의 실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가 가장 기본에 충실했는지에 모든 게 판가름 난다.

[송성훈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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