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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자재값 뛰는데 분양도 막막…지방건설사 "공사할수록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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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값 40% 인건비 20% 급등
생사 갈림길에 내몰려


부동산 호황때 무더기 수주
경기 악화되자 부메랑으로
종합건설사 올해 4곳 부도

업계 전체로 자금경색 확산
하청사업 구조 전문건설사
연쇄적 도산 이어질 가능성
◆ 지방건설 줄도산 공포 ◆
◆ 지방건설 줄도산 공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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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부도 상태에 몰린 충남 지역 건설사 우석건설은 생사 갈림길에 선 지방 중소 건설사들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사례다. 창업 후 30년 동안 관급 공사를 위주로 하며 내실을 다져온 이 회사는 아파트 건설 붐이 일자 2~3년 전부터 시행사의 신탁사업을 수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오피스텔 공사를 수주하며 주택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것이다. 매출이 늘고 사세는 확장됐지만 속 빈 강정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원자재값이 올라 감당이 안 됐다"며 "리스크를 반영하지 못한 채 수주에 주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중소 건설사들은 시공 계약을 맺을 때 '설계변경 불가' '책임준공'과 같은 조건을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최근 같은 원자재값 급등 국면에선 공사를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다. 원자재값 상승 충격에도 중소형 건설사가 더 취약하다. 대형 건설사는 매입처와 장기 계약을 맺어 상대적으로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들여올 수 있는 반면 중소 규모 건설사는 사업 건에 따라 단기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전·충남 지역의 한 건설사 관계자는 "종합건설업체가 1차 부도가 난 상황이라면 하도급인 전문업체들 역시 줄줄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며 "(중소형 건설사 위기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라고 우려했다.

18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종합건설사 중 부도를 맞이한 업체가 올해 들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단 2곳에 불과했던 부도 업체는 올해 들어 7월까지만 해도 4곳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지난 수년간 부동산 경기가 워낙 과열된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든 것도 현재 상황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수주에 열을 올렸으나 부동산 시장이 갑자기 침체기를 맞으며 상황이 반전됐다는 분석이다. 박철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도는 경기가 좋을 때 오히려 위험하다. 경기가 좋다고 건설사가 지나치게 일을 벌이다 지금과 같은 악재를 만나면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건설사들은 올해 들어 수주량을 대폭 늘려왔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국내 건설 수주액은 151조33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7% 늘었고, 2년 전과 비교하면 32.8% 증가했다. 고금리 영향으로 공사 발주 환경이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주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공사 기간 지연은 이자비용을 계속 증가시키므로 최대한 빨리 시공을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민간 분양사업을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짜여 있는 건설사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미분양 증가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오피스텔, 상가 등 분양사업을 하는 사업자들의 리스크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분양이 쌓이고 있는 대구에서는 최근 다수 사업장이 공매로 나오고 있다. 시행사 우노디앤씨가 대구 남구 대명동 1226-6 일대에서 추진하던 아파트 및 오피스텔 사업장은 지난 5월 말 공매 절차에 돌입했다. 이후 여섯 차례 입찰을 진행했지만 모두 유찰됐고 현재는 공매 중지 상태다. 최초 감정가는 약 1173억원이었지만 유찰이 거듭돼 현재는 850억원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통상 공매 중지는 물건 가격이 내려가 차순위 채권자가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게 우려될 경우 많이 신청한다"고 했다.

종합건설사로부터 도급을 받아 일부 공정을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들도 내리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8월 건설경기실사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전문건설업체들이 공사대금을 원활하게 수금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사대금수금지수는 56.8로, 전년 동월(65.1)과 비교해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금조달경기실사지수 역시 지난해 8월 65.1에서 올해 8월 57.8로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해당 지수들은 100을 기준으로 그보다 높으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더 많고, 100을 하회할수록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기업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3분기에도 착공 면적이 크게 줄어들면서 건설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고, 4분기에는 자금 조달 악화로 인해 건설 경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중소(하도급) 업체들은 인건비 급등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 경기권 철근·콘크리트(골조) 업체 대표는 "골조 공사의 핵심 인력인 형틀목수와 철근공의 일당은 5년간 35% 올라 현재 23만5000원이고, 외국인 근로자 역시 코로나19 이후 수급이 안 돼 인건비가 최소 20% 올랐다"며 "이대로라면 골조 업체 중 20~30%는 연내 도산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업계에 따르면 주로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건설자재인 목재와 철재 가격도 지난 1년간 40% 급등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설업계에는 부도 위기와 함께 일자리 위기도 엄습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잇달아 사업을 축소하거나 미루면서 인력 수요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직원들 사이에 구조조정 루머가 돌고 있다"면서 "동요하는 분위기를 잡아줘야 하지만, 워낙 업황이 좋지 않아 고민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연규욱 기자 / 김유신 기자 /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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