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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몸값 쌀때 사자"…스타트업 M&A, 투자혹한기에 더 뜨겁다

신유경 기자

입력 : 
2022-10-10 17:59:56
수정 : 
2022-10-11 09: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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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타트업 M&A 129건
3분기에 작년 125건 넘어
경기침체로 투자유치 어렵자
기업 매각으로 돌파구 찾아

스타트업간 합종연횡도 급증
세탁1위, 동종 플랫폼 잇단인수
◆ 스타트업 M&A 급증 ◆

사진설명
올해 들어 세계 경제위기가 가시화하자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이 급증하고 있다. 신규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 데다 사업 환경이 급속히 위축된 만큼 경쟁력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옥석 가리기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국내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 전문기업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스타트업 M&A 사례는 129건에 달했다. 3분기에 이미 작년 기록(125건)을 넘어섰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한 최고경영자(CEO)는 "금리 인상 여파로 투자 유치가 굉장히 어려워졌다"며 "국내외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점도 신규 투자 유치보다는 기업 매각으로 방향을 바꾸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거나 현금을 확보해둔 기업들이 큰 규모의 스타트업 M&A 거래를 성사시켰다.

대기업 계열사 중에서는 카카오게임즈, 현대자동차·기아, LG생활건강 등이 스타트업 M&A 금액 상위 10위 안에 드는 곳들을 인수했다. 예컨대 카카오게임즈는 RPG '오딘: 발할라 라이징'으로 유명한 라이온하트스튜디오를 7540억원에 인수했다. 현대차·기아는 자율주행 플랫폼인 포티투닷을 4277억원에 사들였다. LG생활건강은 미국 화장품 브랜드 '더크렘샵'을 1485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 덩치가 큰 기업이 벤처기업·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올해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같은 스타트업 간 합종연횡도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력 측면에서 비교 우위를 갖춘 스타트업이 몸집을 키우거나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밀키트 1위 스타트업 프레시지가 2위 업체인 테이스티나인을 1000억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거래는 올해 스타트업 M&A 금액 상위 10위 안에 드는 '빅딜'이었다. 프레시지는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 M&A를 성사시켰다. 앞서 프레시지는 올해 또 다른 간편식 업체 '허닭'과 물류 업체 '라인물류시스템'을 인수한 바 있다.

여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운영하고 있는 마이리얼트립도 지난달 '스타트립'을 사들였다.

스타트립은 K콘텐츠 관련 여행지 정보를 제공하고 예약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K콘텐츠와 관련된 장소를 '방탄소년단(BTS) 뮤직비디오 촬영지' '블랙핑크 단골 식당' 등으로 구성하는 식이다. 마이리얼트립은 특히 해외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이번 인수를 단행했다.

이번 인수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여행 콘텐츠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키즈 여행 플랫폼 '동키'를 운영하는 아이와트립을 인수하기도 했다.

비대면 세탁 앱 '런드리고'를 보유한 의식주컴퍼니는 올해 2월 호텔 세탁 업체 '크린누리'를 인수했다. 기업 간 거래(B2B) 세탁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다. 인수를 통해 크린누리가 확보하고 있던 30여 개 고객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여기엔 워커힐, 안다즈 등 국내 주요 5성급 호텔이 포함됐다.

4월에는 무인 세탁소 운영 업체인 '펭귄하우스'를 인수하며 무인 세탁 시장에도 진출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도 M&A를 신사업 진출 통로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스타트업들은 주로 기존에 유치한 투자금 혹은 주식교환을 활용해 M&A를 한다.

이덕준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대표는 "예전에는 손실이 나더라도 큰 자금을 받아 성장할 수 있었는데, 투자 유치가 힘들어지고 경제위기 여파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자 스타트업을 팔려고 하는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며 "반면 투자 혹한기가 오기 전 큰 자금을 펀딩받은 스타트업은 현금과 일부 자사주를 활용해 다른 스타트업을 인수할 기회를 잡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커머스·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인수 대상으로 인기가 높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자체 매출이 아니라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해 비즈니스를 이어가던 곳,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만 수익성이 나오던 플랫폼, 커머스 스타트업이 주요 인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인프라스트럭처를 마련하고 유지해야만 하는 물류 업종도 회전율을 높이면 효율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다른 스타트업과 이합집산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M&A 건수가 급증하고 있으나 금액 면에서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전체 M&A 금액은 3조3086억원으로 지난해(7조1024억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밸류에이션이 크게 낮아진 틈을 타 비슷한 업종의 스타트업을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는 셈이다.

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스타트업 M&A가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해와 같은 투자 호황기와 달리 펀딩에 의한 단계별 성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투자 혹한기에 스타트업들이 더욱 '똘똘 뭉쳐' 어려움을 돌파할 것이란 예측이다. 이 중에서도 주식교환 형식으로 이뤄지는 스타트업 M&A 사례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덕준 대표는 "앞으로 투자 환경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금이 많지 않더라도 상호 주식교환을 통해 M&A를 하는 사례도 대거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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