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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푸틴, 예비군 30만명 동원령…"서방이 핵위협하면 모든 수단 쓸것"

최현재 기자

입력 : 
2022-09-21 17:37:30
수정 : 
2022-09-21 23: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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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무기 생산 확대도 독려 나서
러시아서 외국행 항공권 동나
러시아 증시·루블화값 급락

돈바스·헤르손·자포리자 등
점령지 합병투표 23일 강행

서방 "투표결과 인정 안할 것"
사진설명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러시아 영웅에게 영광을'이라는 슬로건이 적힌 광고판이 서 있다. 9월 들어 전황이 불리해지자 러시아는 도시 곳곳에 모병 광고를 내걸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예비군 징집을 골자로 한 부분 동원령을 선포했다. [EPA = 연합뉴스]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주에서 대패하는 등 전황이 불리해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결국 '군 동원령' 카드를 꺼내들었다. 러시아가 동원령을 발동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30만명에 달하는 예비군을 소집하는 한편 무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자금 지원 등의 조치가 시행된다. 21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통신과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사전 녹화된 TV 연설을 통해 "서방은 우리나라를 파괴하고 싶어하며, 우크라이나 국민을 총알받이로 내몰고 있다"며 "러시아의 주권, (영토적) 통합성, 국민 안전 보호를 위해 부분적 동원령을 내리자는 제안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방이 러시아에 '핵 위협'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면 방어를 위한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영토 보전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이는 엄포가 아니다. 러시아는 대응할 무기가 많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부분 동원령이 이날부터 발동된다며 무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자금 증액을 명령했다. 또 200만명에 달하는 전체 예비군 가운데 30만명을 소집할 것도 지시했다. 이외에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기업과 시민들이 전쟁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함을 의미할 가능성이 있다고 CN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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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루한스크·도네츠크)와 남부 헤르손주, 자포리자주 내 러시아 점령 지역 행정부의 러시아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 계획도 지지했다. 그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 거주민들은 신나치주의자들 굴레 아래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내릴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푸틴 대통령은 동부 돈바스를 장악한다는 기존의 '특별군사작전'상 목표를 고수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서방 주요국은 이날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 발표를 일제히 규탄하면서, 이는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의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동원령 발표 소식에 러시아 증시와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고 유로화 가치도 출렁이는 등 유럽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제인 폴리 라보방크 전략가는 "통화 가치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원령이 내린 직후 러시아에서 거의 모든 해외 비행기편이 매진됐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이웃 라트비아 정부는 동원령을 회피하려는 러시아인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가 동원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조짐은 있었다. 전날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자발적 항복, 동원령, 계엄령, 전시 상황 등의 개념을 형법에 도입하고, 동원령이나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 부대를 탈영한 병사의 형량을 기존의 2배로 늘리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은 동원령, 계엄령, 전시 상황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양형 가중 사유로 규정한 것이다. 기존 형법은 군 복무 관련 형벌의 양형 가중 사유를 '무력 충돌 또는 교전 중'이라고 규정했으나 개정안에서는 '동원 또는 계엄령 기간, 전시 상황, 무력 충돌 또는 교전 중'으로 한층 넓혔다. 러시아 아고라 법률사무소의 파벨 치코프 대표는 로이터통신에 "기존 러시아 형법에는 '동원'이나 '전시 상황'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병역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가 강화된다.

러시아 점령지 행정부들이 일제히 러시아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 계획을 발표한 것도 러시아가 동원령 선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전날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공화국(DPR),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등 친러시아 분리 세력이 장악한 곳과 남부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행정부는 23~27일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합병에 성공할 경우 러시아군은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교전을 '자국 영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자국 방어를 명분으로 동원령을 선포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 분석회사 '알 폴리티크'의 설립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주민투표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보내는 명백한 최후 통첩"이라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서방은 주민 투표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는 주민투표를 조작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이들 영토를 합병할 것"이라며 "미국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어떤 주장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일 미국에서 막을 올린 제77차 유엔총회 일반 토의 현장도 러시아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월 24일(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부터 우리가 목격한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로의 회귀"라며 "프랑스는 이를 거부하고 완강히 평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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