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노조만 참여율 높아 부산이전 갈등 거센 산업銀 노조원 76% 대거 거리로 기업銀도 5000여명 동참
광화문·용산 교통체증 극심 "평소보다 일찍 나왔는데 지각" 바쁜 시간 발묶인 시민 분통
◆ 금융노조 파업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의 총파업 집회로 시끄러웠던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모 지점에는 직원 4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고객은 3명뿐이어서 번호표를 뽑자마자 바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주변의 다른 은행 지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한 지점에서 만난 고객 A씨(52)는 "총파업이라고 해서 지점이 문을 닫거나 대기가 길어질까 봐 여유 있게 왔는데 평소와 똑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노조가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사거리 등지에서 총파업 집회를 벌였지만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참여율은 0.8%에 그쳤다. 은행마다 노조 간부를 중심으로 수십 명에서 100명 정도만 파업에 참가한 수준이다. 임금 5.2% 인상, 주 4.5일제 근무 등 의제들이 공감을 얻지 못한 데다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파업에 참가했다가 역풍을 맞을까 봐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0여 명이 참석했다는 A은행 관계자는 "전 직원이 아닌 노조원을 기준으로 참여율이 1% 이내로 영업 차질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조원의 약 1.7%가 참여했다는 B은행 관계자는 "전 직원을 기준으로 보면 전국에서 지점당 1명도 참석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5대 은행 파업 참여율이 0.8%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고객 불편은 없었지만 출근길 교통 혼잡으로 몇 시간 동안 정체가 이어졌다. 노조원들이 세종대로 4개 차로를 점거하고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면서다. 이들은 '공공기관 탄압 중단'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교통 정체에 대비해 집회 및 행진 구간 주변에 안내 입간판 40개를 설치하고 교통경찰 등 200여 명을 배치해 관리에 나섰지만, 버스 이동 등이 원활하지 않아 일부 시민들의 발이 묶였다. 서울시 교통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도심 차량 통행 속도는 시속 11㎞대까지 떨어졌다.
서울 중구 모 회사에 근무하는 박 모씨(27)는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광화문 인근에서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해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15분가량 지각했다"고 전했다. 은평구 불광동에서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이 모씨(53)도 "시위를 해도 한참 바쁜 시간을 피해서 할 것이지, 이렇게 길을 막고 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금감원에 따르면 17개 은행의 파업 참여자 수는 이날 오전 기준 9807명, 파업 참여율은 9.4% 수준(전 직원 대비 기준, 조합원 대비로는 13.6%)이었다. 금융노조가 내세운 임금 인상, 주 4일제 근무 등 주장이 '귀족노조의 탐욕'이라며 뭇매를 맞은 영향이 크다. 6년 전 총파업 당시 열심히 참여한 은행들이 욕만 먹고 고객을 빼앗긴 학습 경험도 작용했다. 금융노조는 당초 교섭에서 2022년 임금 인상률로 6.1%를 요구했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5.2%로 낮췄다. 근무시간도 처음에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 근무를 주장했다가 비난이 이어지자 '1년간 시범실시 후 주 4.5일 근무'로 선회했다.
이날 파업은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노조 등이 주도했다. 본점 부산 이전을 두고 사측과 갈등하는 산업은행은 전 직원 3400여 명 중 16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노조원(약 2100명) 기준으로는 참여율이 76%에 달한다. 마찬가지로 정치권에서 부산 이전설이 나오는 수출입은행 참여율도 5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도 5000명 안팎의 노조원이 참석하며 참여율 50%를 보였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반대하고 있다. 정원 감축, 경비·업무추진비 예산 삭감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은행 영업은 큰 차질 없이 마감됐다. 앞서 15일 접수를 시작한 안심전환대출 신청이 방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문제는 보고되지 않았다. 지난 총파업이 있었던 6년 전보다 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 사용은 늘고 창구 이용은 줄어든 점도 큰 혼란이 없었던 요인이다.
[서정원 기자 / 박나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