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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학생없는 학생수영장에 수십억 들이며…재래식 변기 교체는 뒷전

이상헌,진창일 기자

이상헌,진창일 기자

입력 : 
2022-09-14 17:56:29
수정 : 
2022-09-14 22: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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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조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주먹구구식 운용

교육부, 10여개 항목만 활용해
교육청 지출·수입 추산해 분배
"실질수요 반영못해" 지적도

교육청 입맛대로 교부금 편성
기금적립·선심성 사업 치중
집행내역 불투명 불신 키워
◆ 방만한 교육재정 ④ ◆

사진설명
14일 경기 부천시 도당학생체육관 수영장 내부 모습. 경기도교육청이 학교 체육 활성화를 위해 34억원이나 들여 건립한 시설이지만 학생들은 거의 찾지 않고 대부분 일반인이 이용하고 있다. 인근 학교 한 관계자는 "학교에서 수영장까지 10분가량 걸리는데 1시간도 안 되는 체육시간을 위해 그 거리를 이동할 순 없다"며 "학교 체육 활성화라는 당초 취지는 지금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박형기 기자]
해마다 혈세 수십조 원으로 마련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교육부는 몇 가지 항목만 기준 삼아 '기계적으로' 시도교육청별 지출·수입 예상액을 산출해 배분하고 거액의 돈을 받은 교육청에서는 재원을 원칙 없이 '입맛대로' 편성할 수 있어 여유자금이나 선심성 사업비 등으로 허비되고 있다. 예산 편성부터 결산 검증까지 모두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교육당국에 따르면 내국세 20.79%와 연동되는 교부금은 교육부가 자체적으로 시도교육청별 차기 연도 재정 수요·수입 예상액을 계산해 배분 규모를 정한다. 수요액은 교직원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 등 13개 항목이며 수입액은 지방자치단체 전입금 등 4개 항목을 근거로 산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단순 예상치가 과연 실수요에 얼마나 부합하느냐다. 지출과 수입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아 재원이 불균형하게 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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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감사원은 '지방교육재정 효율성 및 건전성 제고 실태 감사 보고서(2020년)'를 통해 "시도교육청에 균형 있게 재원을 배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근거에 따라 정확하게 재정 수요를 측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만약 학교 경비 등이 실제 수요보다 과다하게 산정·예측되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감사원은 이어 "시도교육청에서 기존 교부금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학생 수 감소 등에 따른 각종 비용 절감 노력(학교 통폐합 등)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교육재정의 방만 운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배정된 교부금은 일선 교육청에서 '무원칙'으로 쓰인다. 교부금은 특별교부금과 보통교부금 2개 유형으로 나뉘는데 특별교부금은 말 그대로 특별한 재정 수요가 있을 때만 교부되며 집행 용도가 제한된다.

이와는 달리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보통교부금은 교육청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다. 앞서 교육부가 산출한 수요 항목에 구속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세출예산에 편성할 수 있다. 보통교부금은 교육청별 본예산의 70~80%, 추경에서는 대부분을 차지한다.

교육청에서 교부금을 마음대로 이곳저곳 편성할 수 있다 보니 기금 적립이나 성과 위주 선심성 사업 등에 치중하고, 이러한 경향은 추가경정예산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정작 필요한 사업은 뒷전으로 밀리거나 수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특정 사업에 예산이 과다·중복 집행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세운 2차 추경안이 40여 일 만에 시의회 관문을 가까스로 통과했는데, 시의회는 예산안이 주먹구구식으로 편성됐다며 심의를 재차 보류한 바 있다. 추경예산의 약 70%인 2조7000억원을 각종 기금으로 적립하겠다는 게 문제가 됐다.

예산이 넘쳐나는데도 일선 학교 1055곳에 대한 재래식 변기 2만3057개를 교체하는 사업비는 당초 예산안에 빠졌다가 재편성 과정에서 뒤늦게 반영돼 비난을 더욱 키웠다. 반면 추진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성과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스마트기기 휴대학습 사업 등 일부 예산은 수백억 원씩 증액됐다는 지적이 국민의힘 의원을 중심으로 나왔다.

올해처럼 지방선거와 맞물리는 시기에는 신임 교육감 공약 이행 자금 위주로 추경예산이 짜인다. 제주도교육청은 최근 본예산보다 2873억원 늘어난 1조6524억원 규모 1차 추경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가 눈총을 받았다. 예산안 중 스마트기기 지원 등 교육감 공약 관련 사업이 27개·1025억원으로 세출 증액분의 35%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도교육청은 도의회에서 타당성 검토 부족 등을 지적받고 94억4500만원을 감액했다. 고의숙 제주도의회 교육의원은 "공약 역시 도민과의 약속"이라면서도 "다만 학교 현장 의견이나 관련 조례 검토 등이 부족한 예산 편성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교부금이 상세하게 집행된 내역은 파악조차 어려워 국민적 불신만 키우고 있다. 시도교육청은 물론 교육당국이 운영하는 지방교육재정알리미 공시 내역도 교부금과 지자체 전입금 등이 정부이전수입으로 혼용돼 각기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산출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매년 혈세 수십조 원이 고정적으로 투입되고 있는데도 재원 편성부터 집행, 결산에 이르기까지 교부금 전반에 대한 타당성 검증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교부금이나 자체 수입 등 각 항목을 모두 합산한 재원으로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에 특정 예산이 정부 교부금인지, 지자체 전입금인지, 자체 수입인지 세분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교부금만 특정해 사후 검증을 받는 절차는 별도로 없다"고 밝혔다.

[춘천 = 이상헌 기자 / 광주 = 진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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