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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년전에 한 학교시설 공사 한번 더…"갑자기 2억 쓰는게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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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학교마다 돈 쓰기 골머리


전년도에 과학실 공사했는데
과학교구 교체 예산 또 내려와
툭하면 고사양 컴퓨터 바꿔

연말에 추경예산 급하게 풀려
울산 학교들 교문까지 싹 바꿔
시설보수 몰려 공사업체 품귀

교육부 돈 빨리 쓰면 인센티브
교육청 방만재정 부추기기도
◆ 방만한 교육재정 ③ ◆

사진설명
13일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체육관과 급식실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아이들이 하교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와는 무관함. [한주형 기자]
지난해 강원도 일선 학교들은 교육청이 내려보낸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예산을 제한된 기간 안에 소진하느라 진을 뺐다. 강원도 A고등학교는 2020년에 과학실 1개 교실을 리모델링했다. 여기에는 사전 수요조사를 통해 교육청에서 배정받은 예산 3000만원이 쓰였다. 바닥재 등이 모두 새것으로 교체됐다. 이후 지난해 말 과학실 교구 교체 명목으로 예산이 또 내려왔다. 이번에는 교육청이 자체 현장조사를 통해 전체 과학실(4개 교실)에 대해 일괄적으로 2억원을 교부했다. 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으로 추경을 편성해 내려보낸 것이다. 학교 측은 2억원의 사업비로 과학실 3개 교실 리모델링과 3D프린터, VR(가상현실) 장비, 터치스크린, 고사양 컴퓨터 등 고가 장비를 사들였다. 이를 두고 학교 안팎에선 예산 낭비 논란이 불거졌다. 대규모 예산 소진을 위해 멀쩡한 교구를 교체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학교 관계자는 "갑자기 2억원을 쓰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급한 대로 값나가는 교구를 구입해야 했다"고 말했다.

교육청 예산 낭비 논란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2018년 충북에서는 충북도교육청이 초·중학교 체육 교구 구입비 지원 사업을 시행하면서 학교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예산을 균등 지급해 혈세 낭비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 도내 초·중 체육 교구 구입비 지원 사업 총 예산은 42억원 상당으로, 학교 규모와 상관없이 초등학교는 1개 학교당 1278만원, 중학교는 1개 학교당 770만원이 일괄 배당됐다. 당시에도 일부 학교는 돈을 제때 쓰느라 고가의 체육 설비를 구입했다.

지난해 말 울산에서는 일선 학교들이 시설 개·보수를 하는 공사업체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공사업체는 한정돼 있는데 울산시교육청이 내려준 돈을 쓰려는 학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당시 울산시교육청은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보통교부금 1500억원을 확보해 600억원을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다. 추경 당시 일선 학교에서 요구한 돈은 187억원. 나머지 400억원은 뚜렷한 용처 없이 일선 학교에 풀렸다. 교육청 관계자가 울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갑자기 예기치 못한 예산이 오다 보니까 학교에서 업무 부담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울산 지역 일선 학교 수는 437곳. 교부금 불용 처리를 피하기 위해 학교마다 올해 2월까지 5개월 안에 평균 1억3000만원을 써야 했다. 돈을 쓸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일선 학교들은 교실 리모델링, 놀이시설 교체 등 복잡한 입찰 과정이 필요 없는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B초등학교는 올해 초 2000만원을 들여 교장실과 교무실을 리모델링했고, C고교는 7000만원을 들여 교문을 교체했다. 울산 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는 "시설 교체와 개선이 필요한 학교도 있겠지만 본질은 돈이 있으니까 쓴 것"이라며 "갑자기 내려온 돈을 사용할 만한 곳을 찾고 정산하느라 학교 행정실과 교사들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지역 교육청들이 설립한 체육시설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도당학생체육관과 부천학생수영장은 당초 설립 취지를 못 살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 기관은 학교 체육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아 '학교 체육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교육청은 2개 기관에 올해에만 6억81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학생 활용도가 크게 낮다. 수영장을 주요 시설로 둔 도당체육관은 2019년을 기점으로 일반인 이용자 수가 학생 이용자 수를 추월했다. 1일 단위 수영장 이용자 수를 보면 이용자가 소수 학생에 집중돼 있고, 특정 시간대에는 아예 일반인에게 개방해 다수 학생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부천학생수영장도 1일 이용 가능 인원은 60명이지만 코로나19 전인 2018년 32명, 2019년에는 20명이 이용하는 데 그쳐 사실상 유휴 시설로 전락했다.

교육부가 예산을 빨리 소진하면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교육청 방만 재정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재정 집행 효율성 제고라는 명목으로 교육청이 예산을 빨리 쓰고 덜 남기면 최대 100억원의 인센티브를 보통교부금에 반영하고 있다. 홍성우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은 "기간 안에 돈을 다 쓰면 인센티브를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나. 미처 쓰지 못한 교육부 예산은 회계연도를 넘겨서도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산 = 서대현 기자 / 춘천 = 이상헌 기자 / 수원 =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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