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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조명` 대기업 막자 필립스가 장악…국내업체 90% 사라져

양연호 기자

입력 : 
2022-09-12 17:27:05
수정 : 
2022-09-13 09: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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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적합업종 논란 가중

막걸리 시장선 1위기업 독식
나머지 중소기업은 고사위기

중기 보호하겠다는 정책이
되레 산업 경쟁력 깎아먹어

매출증가·비용절감 효과 미미
KDI, 적합업종 제도 폐기 권고
◆ 기로에 선 중기적합업종 ◆

사진설명
대한방화문협회는 최근 동반성장위원회에 '금속 문·창·셔터 및 관련 제품 제조업(방화문)'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동국제강과 아주스틸 등 주요 철강 기업이 방화문 제조업 진출을 예고하자 70여 개 중소기업이 모인 단체가 대기업의 진출을 막아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대기업이 방화문 시장에 진출하면 자본, 가격 경쟁력, 원재료 수급 등의 우위 때문에 중소 제조업체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협회 측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방화문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길과 유독가스 등이 확산되지 않게 막아주는 제품이다. 지난해 품질인정제가 도입되면서 안전하고 적법한 방화문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억원의 설비 투자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12일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2015년부터 연평균 6개 업체가 폐업하고 있을 정도로 소규모 방화문 업체들은 이에 대응할 자금이 부족하다"며 "대기업 진입이 막히면 품질 악화뿐 아니라 수급난까지 발생할 우려가 높다"고 전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실효성 논란에 휘말리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플라스틱 재활용업과 방화문 제조업, 방역소독업 등 최근 중기 적합업종 지정을 추진 중인 산업에서 대·중소기업이 강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합업종 제도가 사업 영역 보호에 치우친 나머지 산업 경쟁력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중기 적합업종 제도에 대해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라며 폐기할 것을 권고한 게 이 같은 갈등을 키운 발단이 됐다. KDI에 따르면 2008~2018년 중기 적합업종 제도 시행 효과를 분석한 결과 제도의 보호를 받은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 등 경제적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KDI는 "생산액,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총요소생산성 등은 제도 도입으로 인한 효과가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적합업종 지정 기간이 끝나면 생산성 관련 지표들은 개선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실제 일부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중기 적합업종 제도가 사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부작용이 컸던 대표적인 사례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기구다. LED 조명기구가 2011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대기업은 칩과 패키징 등 광원과 벌브형 등 일부 제품만 생산할 수 있도록 시장 참여가 제한됐다.

국내 LED 제조 중소기업 D사 관계자는 "국내 LED 조명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밀려나자 그 빈자리를 필립스와 오스람 등 외국계 기업이 차지해 시장을 잠식했다"며 "현재 살아남은 국내 업체는 1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산업 생태계가 성장하면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는데 기회를 상실한 꼴이 됐다는 얘기다. 중고차 판매업도 대기업 진출이 제한되자 투명한 가격 결정 등 관행이 불거지며 소비자 후생을 떨어트렸다는 지적이다.

동반성장위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 '자동차 단기 대여 서비스업'과 '대리운전업' 등 2건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2019년 이미 한 차례 지정된 이후 지정 기간이 3년 연장된 자동차 단기 대여 서비스업을 제외하면 신규 지정은 현재까지 1건에 그친다. 적합업종 제도 적용 첫해인 2011년 23건에 달했던 지정 사례는 2015년 24건을 기록한 이후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 3년 동안 신청 건수가 300건가량으로 많았기 때문에 이후 대폭 줄어든 것이라는 게 동반성장위 설명이다. 보호 기간이 최초 3년, 최대 6년으로 한시적이다 보니 총 111개 권고 업종·품목 중 108개가 이미 기간 만료로 해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합업종 제도의 당초 취지보다도 부작용이 더 큰 것이 제도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제도 도입 때와는 달리 현재 플랫폼 경제가 확산되면서 이해관계의 대립 구도가 복잡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플랫폼과 중소기업이 서로 경쟁하면서도 의존하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는 갈등의 양상도 과거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5월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대리운전업이 대표적이다.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는 대리운전업 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사업 확장이 제한됐음에도 티맵모빌리티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규탄대회에 나선 상황이다.

한 대리운전업계 관계자는 "티맵모빌리티가 대리운전 중개 프로그램 업체 로지소프트를 인수한 뒤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사업 확장 행위를 하고 있다"며 "동반성장위가 대기업에 사업 확장 자제 권고만 내놓고 중개 프로그램 등과 관련해 세부 사항에선 끝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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