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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달러예금 올해 14% 수익…서학개미 환차익에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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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 시대가 바꾼 풍경

환차익 덕에 외화예금 대박
미국산 와인대신 유럽산 선호
美 골프채 일본서 구매하기도

유학비용 껑충 뛰어 한숨
하와이로 신혼여행 가려다
비용 부담에 스페인 급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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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중은행 달러예금을 만기 해지한 김 모씨(42)는 그 예금을 원화로 환산해 다른 통장으로 입금했는데 수익금을 보고 깜짝 놀랐다. 1년 전 1500만원을 맡겼는데 해지 후 받은 돈이 1704만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1년 전 은행에서 이자가 없어 환차익만 기대해야 한다며 비관적으로 얘기했는데 돈이 불어나 '착오 송금'인 줄 알았다"며 "환테크의 위력을 알고 나서 최근 사상 최저 수준인 엔화예금을 가입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입한 달러예금은 1년 금리가 고작 연 0.07%로, 이자는 없는 것과 다름 없었는데 1년(2021년 8월 말~2022년 8월 말)간 환율이 급등한 덕분이다.

김씨의 달러예금은 이자소득세 등 세금을 떼고도 수익률이 13.6%에 달했다. 8일 신한은행에 따르면 이 기간 달러 대비 원화값은 16.1% 급락했는데 그만큼 달러값이 급등했다는 뜻이다.

김씨처럼 달러예금을 만기 해지 정리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환테크(환율+재테크)족이 속속 나오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시중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2021년 말 594억달러였다. 그러나 최근 기업과 개인들이 달러예금을 찾아가면서 7일 현재 568억달러(약 78조5000억원)로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은 환헤지를 위해 1350원 선에 매도 시점을 잡아 놓은 경우가 많아 달러예금이 감소했다"며 "이와 달리 개인들은 강달러가 지속된다는 판단에 따라 달러예금을 유지하거나 매도를 주저하고 있다"고 밝혔다.

1년 전만 해도 시중은행들은 달러예금에 1%도 안 되는 금리를 책정했으나 최근 강달러가 지속되자 달러 확보를 위해 달러예금 금리를 높이는 추세다.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은 환차익 외에 일반 금리로 6개월 이상만 유지하면 연 3%대 금리를 약속한다. 특히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엔화예금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2022년 7월 중 거주자 외화예금 동향'에 따르면 국내 엔화예금은 54억8000만달러로, 2021년 말(52억5000만달러)보다 늘었다. 달러 급등기인 지난 1년(2021년 8월 말~2022년 8월 말)간 코스피 수익률은 -21%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기록했다. 미국 우량주 지수인 S&P지수는 같은 기간 하락률이 12%로, 국내 주식보다는 더 나았고 환율 효과도 있었다.

엔비디아, 알파벳A, 애플 등 다양한 미국 주식을 보유 중인 30대 여성 A씨는 "지난 1월 28일 834.99달러(3대1 액면분할 전 기준)에 매수했던 테슬라 주식은 최근 종가(액면분할 후 283.70달러) 대비 약 1.9% 수익률이 찍힌다"면서도 "매수 당시 달러당 원화값이 1202.4원에 불과해 원화 기준으로는 약 17.43% 이익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통상 미국 달러화 가격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주요국 통화(유로화·엔화 등)마저 달러화 대비 약세에 빠지며 각종 미국산 제품을 유럽·일본산으로 대체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 와인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유럽 와인으로 수요가 몰리고, 미국산 골프채를 미국에서 직구하지 않고 일본에서 사들이는 이들도 생겨났다.

환테크족과 달리 달러로 일상을 버텨야 하는 생계형 국민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12월 결혼을 앞둔 A씨(32)는 신혼여행지를 최근 하와이에서 스페인 등지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A씨는 "항공비는 스페인이 하와이보다 200만원가량 더 들지만 일주일간 숙박비, 식비, 렌트비, 기름값 등 견적을 내보니 비용 차이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며 "특히 연말까지 환율이 더 오를 것 같아 이를 고려해 계획을 변경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하는 B씨(47)는 현재 미국 뉴저지주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과 협의한 끝에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계획을 돌렸다. 원화값 폭락으로 안 그래도 연 수천만 원에 달하는 딸의 유학비용을 더 이상 부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는 "딸이 내년에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유학비용이 4~5배가량 뛸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체감 물가가 이미 한국보다 비싸졌다는 소식에 현지 체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한국에서 물건을 사 가는 추세다.

미국 체류 정보공유 인터넷 카페에선 미국 이민 또는 장기 체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미 현지에선 공산품 가격이 특히 폭등하고 있다"며 "각종 주방용품,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 상비약, 여러 종류의 수납박스 등을 한국에서 챙겨 오는 것을 추천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미국에서 생활 중인 재외국민들은 생활비가 폭증하자 레스토랑에 내는 팁마저 아끼기 위해 테이크아웃을 하는 등 궁여지책을 동원하고 있다.

[문일호 기자 / 안정훈 기자 / 이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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