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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원화값 하락 속도 유로화보다 2배 빠른데…뾰족수 없어 당국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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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 회오리에 취약한 한국 경제

美긴축 엎친데 무역적자 덮쳐
개도국보다 불확실성 더 커져
일주일새 원화값 3.4% 속락
베트남 동·인도 루피는 선방

원화값 방어 대책 시급한데
당국은 약발없는 구두개입뿐
한은총재도 한미 금리차 용인

1400원까지 무너지나 초긴장
◆ 강달러 초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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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이 전장보다 12.5원 내린 1384.20원에 마감했다. 원화값이 1380원을 하회한 건 13년5개월 만이다. [이충우 기자]
달러당 원화값이 일주일 새 무려 50원 가까이 하락한 건 글로벌 강달러 영향과 함께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원화는 9월 들어 다른 나라에 비해 하락 속도가 훨씬 더 빨라 시장의 염려도 커지고 있다. 달러 강세라는 공통적인 요인에 더해 우리 외환당국이 외환시장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시장과의 소통에 실패하며 원화값 추가 하락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외환시장의 불안이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의 부담을 높이고,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수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당국에 적극적 대응을 주문했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 종가(1371.7원) 대비 12.5원 하락한 1384.2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1일(1392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날 외환시장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 영향을 받았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지난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연 3.3531%까지 오른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우려에 달러 매수세가 가속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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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며 110.214까지 치솟았다. 다만 이 같은 글로벌 강달러 현상에도 불구하고 최근 원화값 낙폭은 다른 통화 대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일주일 새 원화값은 3.37% 하락했는데, 원화보다 가치 하락이 큰 주요 통화는 엔화(3.69%)가 유일하다. 또한 유로화(1.63%)의 두 배 수준이다. 같은 기간 베트남 동과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각각 달러 대비 0.70%, 0.2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원화 하락폭이 커진 이유는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를 봉쇄하는 등의 조치로 중국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며 최근 약세를 보이는 위안화와 원화가 동조화 현상을 나타내며 원화 가치 하락이 가팔라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시장마저 둔화되며 원화값 방어를 위한 수단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강달러 현상이 가속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외환당국이 대응에 실패해 원화값 낙폭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한미 금리 차 역전에 대해 용인할 것을 공개적으로 시사한 만큼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통화가치가 더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외환시장 불안은 결국 기업과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원화값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한은 입장에서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한은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늦어지고, 기업 입장에서 재무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 주변국 중 통화가치 하락폭이 가장 큰 통화는 일본 엔화다. 달러당 엔화값은 이달 들어 3.6% 넘게 떨어졌다. 7일 엔화값은 24년여 만에 최저치인 달러당 144엔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엔화는 원화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엔저의 가장 큰 요인은 미·일 금리 차다. 연준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은 경기 활성화를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원화는 계속되는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통화가치가 갈수록 떨어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원화값이 연일 추락하자 정부는 외환 딜러 등과 협의 채널을 가동해 시장 안정을 모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주요 은행 외환시장 담당자들은 이날 서울외환시장운영협의회 회의를 열어 원화값 하락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서울외환시장운영협의회는 외환시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설립된 민간 중심의 협의기구다. 기재부는 최근 해외 주요 투자은행들과도 잇달아 콘퍼런스콜(전화회의)을 하며 국내 외환 건전성 상황 점검에 나섰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외환시장 수급을 안정화할 수 있는 각종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며 "경상수지와 내외국인 자본 흐름 등 외환 수급 여건을 감시하고 관계기관 합동으로 시나리오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재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전 세계 강달러 현상이라는 구조적 현상이 원화값 하락을 촉발하며 정부 대책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당국은 올 들어서만 네 차례(3월·4월·6월·8월) 공식 구두 개입에 나섰고 외환보유액을 투입해 잇달아 시장 안정조치를 취했지만 원화값은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외환 흐름을 면밀히 보며 시장 쏠림현상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필요시 적절한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놨지만 시장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유신 기자 / 김덕식 기자 /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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