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자크기 설정

기사 상세

기업

정부 `항공MRO 육성` 구호만…"軍정비물량 민간에도 개방을"

이유섭 기자

입력 : 
2022-09-06 17:54:03
수정 : 
2022-09-06 17:55:56

글자크기 설정

2018년에야 첫 전문업체 설립
항공정비산단도 아직 조성 중

대한항공 등 자체물량 소화 급급
국내수요 1조원 이상 해외 의존

MRO기술 고도화로 새시장 열려
AI 활용 예방정비 기술 필수
화물기 개조 중개사업도 주목
◆ 급성장하는 항공 MRO (下) ◆

사진설명
싱가포르의 대형 항공·방산 기업인 '싱가포르 테크놀로지스 엔지니어링(ST엔지니어링)'은 1997년에 설립됐다. 4개 상장사 합작으로 만들어진 ST엔지니어링에서 항공 정비·수리·분해조립(MRO)을 자회사인 'ST에어로스페이스'가 맡고 있는데, 이 회사는 모기업보다 20여 년 앞선 1975년에 만들어졌다. 현재 아시아·태평양을 비롯한 세계 항공 MRO 시장을 휩쓰는 글로벌 기업들의 역사도 ST에어로스페이스 못지않게 길다. 1950년대에 설립된 홍콩의 '해코(HAECO)'와 1989년 출범한 중국의 '아메코 베이징' 등이 대표적이다. 또 ST에어로스페이스가 대규모 항공산업단지인 '셀레타 에어로스페이스 파크'를 조성한 것은 벌써 2014년의 일이다. 현재 60개 이상의 글로벌 항공기업과 6000명 이상의 직원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항공 MRO 산업은 아직까지 '태동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항공 정비사업 육성 방안을 처음 내놓은 것은 2015년이다. 2017년 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항공기 정비사업자로 선정해 2018년에야 항공 MRO 전문업체인 한국항공서비스(KAEMS·캠스)가 탄생했다. 캠스는 저비용항공사(LCC) 정비 물량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올해 전년 대비 167% 성장한 매출 276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ST에어로스페이스의 올해 상반기 매출(14억달러·약 1조9000억원)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이 항공기 정비사업을 전혀 안 한 것도 아니다. 대한항공은 2004년부터 MRO 사업을 했다. 인천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항공엔진테스트시설(ETC)도 있다. 하지만 자사와 계열사 항공기 정비 수행률이 절대적으로 높으며, 국내외 매출도 엔진 완전분해(오버홀)에 편중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아시아나도 항공 정비 인프라스트럭처가 부족해 자사·계열사 항공기만 겨우 소화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형 항공사들은 항공 MRO를 자체 정비를 통한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생각했다"며 "대한항공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MRO 사업을 키울 유인도 적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는 동안 해외 항공사 물량을 수주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외주 비중이 90% 이상인 LCC로 인해 항공 MRO의 해외 의존도가 50%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정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항공 MRO의 국내 처리 비중은 44%(7000억원)에 그친다. 나머지 1조원 이상의 MRO 수요를 해외 업체에 넘겨줬다는 의미다.

지난해 정부는 재차 '항공 MRO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항공 정비 업계에서는 대책의 핵심이 돼야 할 '수출 전략'과 '군 정비 물량의 민수전환' 내용 등이 빠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부 대책은 좋은 이야기를 나열해 놓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정권이 바뀌면서 그마저도 잊혀 산업 육성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인천과 경남 사천에 조성 중인 항공 MRO 산업단지가 가동되려면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대한항공이 주도하는 인천 항공 정비 클러스터는 2025년 완성될 예정이다. 그마저도 항공기 엔진 정비 중심이라 해외에 전량 정비를 의존하는 랜딩기어(착륙장치) 등 종합 항공 MRO 클러스터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캠스 중심의 사천 산단은 2027년 이후에나 조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수·군수를 아우르고 해외시장 진출까지 염두에 둔 산단이지만, 사천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첨단 기술과의 결합으로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는 항공 정비 기술의 향상도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이미 해외 항공 MRO 업체 중 네덜란드 항공우주연구소(NLR)는 인턴 직원 수준의 정비를 할 수 있는 로봇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또 에어버스 등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와 정비 업체들은 드론 기업과의 협업을 진행 중이다. 육안 검사의 한계를 드론을 활용한 외부 검사 기술로 넘기 위함이다.

인공지능(AI)은 항공기 결함을 사전에 포착·대처하는 '예방정비'의 핵심 기술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올리버와이먼은 AI를 활용한 예방정비를 통해 항공기의 수명을 최대 35% 늘리고, 인건비는 10% 절감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밖에 증강현실(AR)과 디지털 트윈(물리적 세계와 같은 디지털 공간) 기술 등도 후발주자인 한국이 글로벌 경쟁업체를 따라잡기 위해 반드시 장착해야 할 요소로 분류된다.

이런 가운데 해외로부터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P2F(Passenger To Freighter) 물량을 국내로 가져오는 일종의 '항공 MRO 중개'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케일럼은 영국의 항공기 리스 기업인 월드스타에비에이션(WSA)과 이달 중 '에어버스 A321'의 화물기 개조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화물기 개조는 캠스가 맡을 가능성이 높은데, 최종 확정되면 국내 화물기 개조 사업의 첫 사례가 된다.

[이유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