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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기침체에 에틸렌 수요 뚝…석유화학업계 "공장 돌릴수록 손해"

한국 주력산업 `빨간불`

석유화학, 하반기 적자 경고등

반도체·전자업계도 `발등에 불`
3분기 D램·낸드 값 하락 전망
삼성전자 재고 반년새 26% 쑥

정유는 긴장 속 감산 가능성도
◆ 얼어붙는 산업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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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며 '반짝 호황기'를 누렸던 한국 주력 산업에 경고등이 켜졌다. 철강·반도체·전자·석유화학 등 현장 곳곳에서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팽배하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넘쳐나는 주문량 덕에 공장을 쉴 새 없이 돌려왔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선진국의 금리 인상 기조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제품 수요가 빠르게 줄고 있는 탓이다. 대표적 경기 민감업종인 철강업계부터 눈에 띄게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28일 포스코에 따르면 평소 4주치 수준을 유지했던 주문 물량이 최근 1주치로 급감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 경기가 좋을 때는 통상 4주치 물량을 확보해 생산 계획을 수립한다"며 "주문 물량이 1주치에 불과하면 비상 상황으로 보는데, 지금이 딱 그렇다"고 말했다. 주문 물량이 쪼그라들다 보니 포스코는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해 생산성이 낮은 편인 자동차용 특수강 제품까지 적극 수주에 나서고 있다.

당초 철강업계는 올 4분기부터는 시황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악화 속에 건설·자동차·가전 등 전방산업 부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수요가 빠르게 감소하는 스테인리스(STS) 생산량부터 조정할 계획"이라며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도시 봉쇄를 언제 푸느냐가 시황을 좌우할 단기적 변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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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난으로 고공행진하던 반도체 가격이 주춤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도 경영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전자제품 수요가 위축되면서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재고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3분기 낸드플래시·소비자용 D램 가격이 전기보다 13~18%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우려와 지정학적 이슈 속에서 고객사의 일시적인 메모리 재고 조정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D램의 경우 무리한 판매 확대보다 수요에 맞춘 탄력적 공급을, 낸드플래시는 고용량 제품과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요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시설 투자를 많이 해야 메모리를 많이 구매할 텐데 전체적인 시장 상황이 안 좋아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반기 말에 이미 재고량은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삼성전자 재고자산 총액은 52조922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6% 증가했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의 재고가 30.7%, 휴대폰·가전을 담당하는 DX부문의 재고가 21.3% 늘어났다.

SK하이닉스의 6월 말 재고자산 총액도 11조878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 감소에 LG전자도 공장 가동률을 조정하고 있다. LG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HE사업본부의 영상기기 평균 가동률은 80.4%로 전년 동기(97.8%)와 비교하면 크게 낮아졌다. 같은 기간 H&A사업본부의 세탁기 평균 가동률은 108.8%에서 89.5%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업계도 하반기 실적 우려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은 6월(-0.4%)과 7월(-1.7%) 두 달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시황 악화로 국내 업체들은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원유에서 추출한 기초 원료인 에틸렌의 스프레드(제품가에서 원가를 뺀 가격)는 이달 셋째주 기준 t당 108달러(약 14만5044원)까지 떨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달 넷째주 들어 t당 130달러(약 17만4590원)로 소폭 반등했지만 손익분기점(t당 300달러)을 크게 밑돌고 있다. 에틸렌은 플라스틱, 건축자재, 비닐 등을 만드는 원료 물질이다.

지난 2분기 롯데케미칼은 2년여 만에 적자로 전환했고, 대한유화·여천NCC 등은 2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 또한 2분기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났지만 3분기에도 실적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에틸렌 스프레드가 심리적 저항선인 20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수요 부진에 대한 우려가 업계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며 "가전제품 생산 업체의 구매가 위축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요가 견조했던 부타디엔 스프레드까지 급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는 긴장 속에 거시경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진 공장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수요가 줄어들어 감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 흐름을 좌우할 변수는 금리 기조와 글로벌 경기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에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2.6%로, 내년 전망치를 2.4%에서 2.1%로 낮췄다. 산업연구원은 '2022 하반기 13대 주력 산업 전망'에서 하반기 13대 주력 산업 수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6.3%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증가세는 이어가지만 증가율 자체는 전년 동기(28.9%)보다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올 하반기 조선·정유·석유화학·가전·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주력 산업에서 생산 증가율이 일제히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유섭 기자 / 우제윤 기자 / 박윤구 기자 / 정유정 기자 /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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