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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수익 오명벗는 퇴직연금…`백만장자 제조기` 원년으로

김정범 기자

입력 : 
2022-08-25 17:55:38
수정 : 
2022-08-25 20: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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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 도입으로 대도약

17살 퇴직연금 초라한 성적표
국민연금보다 年적립액 많아도
운용수익은 10분의 1도 못미쳐

美, 일찌감치 디폴트옵션 도입
은퇴시점 맞춰 투자배분 TDF
가입자비중 12년새 37%P `쑥`
7.4% 수익률로 은퇴부자 탄생

韓TDF시장 2030년 154兆전망
◆ 자본시장 대토론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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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된 '2022 매경 자본시장 대토론회'에서 '디폴트옵션 시대 쉬운 자산관리, 돈 버는 투자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현재 300조원에서 2040년 1000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 안팎에 불과하다. 미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 노후 안전판으로 주목받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8%를 웃도는 것과 극명히 비교된다. 2005년 도입해 17년이 된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현주소다. 매년 국민연금보다 빠르게 적립금이 불어나지만 '쥐꼬리 수익률' 탓에 운용수익 비중이 국민연금의 10분의 1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도입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은 퇴직연금 규모나 수익률 면에서 획기적인 반전이 가능한 계기로 주목받는다. 특히 미국 퇴직연금 성장의 주역인 타깃데이트펀드(TDF) 상품 등이 확산되면 안전성과 수익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25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KRX스퀘어에서 열린 '2022 매경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디폴트옵션 시대 쉬운 자산관리, 돈 버는 투자전략'을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송 선임연구위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로 들어온 적립금액은 56조4000억원가량으로 국민연금 한 해 적립금(53조5000억원)보다 많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은 연간 2%대에 그치는 '쥐꼬리 수익률'로 운용수익이 8조700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지난해 수익률 10% 이상을 기록한 국민연금은 이보다 적은 금액을 투자하고도 91조원이 넘는 수익금을 거둬들였다. 국민들이 퇴직연금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실제 거둬들인 운용수익은 10분에 1 수준에 그친 것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부터, 퇴직연금은 2005년부터 시행됐지만 위험자산 투자 비중이 월등히 높은 국민연금이 고수익을 내며 운용수익 비중에서 퇴직연금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295조5000억원 중 DC형·IRP 적립금은 124조원 수준이다. 디폴트옵션이 적용되는 DC형·IRP 가입자는 2020년 말 기준 606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DC형 자금 중에서도 80%가량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투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DC형 퇴직연금 연간 수익률이 2.49%에 불과한 이유다. 반면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해 거둔 수익률은 7.34%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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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해 7월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서 이 같은 투자 관행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에 선택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자동 투자하는 제도다. 미국 영국 호주 등 퇴직연금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는 선진국 사례를 적극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미국은 2006년 디폴트옵션에 해당하는 QDIA(Qualified Default Investment Alternatives)를 도입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DC형 퇴직연금의 일종인 401(k)를 통해 주식형 펀드나 TDF 등 주식형 상품 투자가 급증했다. 회사가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과 가입자 스스로 운용하는 DC형 퇴직연금 간 수익률 역전도 이뤄졌다. 그 결과 자산 10억원 이상의 퇴직연금 '백만장자'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5년 기준 미국 DC형 수익률은 7.4%로 DB형 수익률(6.7%)을 넘어섰다"며 "TDF를 선택하는 투자 문화가 확산됐고 쉬운 연금자산 관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익률 격차는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TDF는 은퇴 시점에 맞게 주식·채권 등 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연금 상품이다. 생애 주기에 따른 자산배분 전략을 실행하기 때문에 퇴직연금 자금 운용 목적과 가장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6년 미국이 QDIA를 도입했을 당시 TDF에 투자하는 비중은 가입자 기준 19% 수준에 그쳤지만 2018년에는 56%까지 커졌다. 이를 국내에 적용하면 지난해 7조6000억원에 불과했던 TDF 규모가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2030년 154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분석됐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가령 미국은 20·30대가 적극적으로 TDF를 선택함으로써 주식투자 비중이 80% 이상으로 상승하는 등 자산배분 효과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다만 디폴트옵션 정착을 위해서는 가입자 교육은 물론 투자 편의를 높이는 다양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됐다. 일례로 퇴직연금 장기 투자 문화를 정착하려면 이직할 때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속 투자가 가능한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회사를 옮길 때 법적으로 퇴직연금 포트폴리오 이전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제약이 있다"며 "반면 연금 선진국에서는 이직 시 연금 포트폴리오를 다른 기금 또는 개인퇴직연금계좌(IRA)로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수익률 향상은 디폴트옵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매일경제가 국내 8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200명과 삼성증권 DC형 가입자 2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은 디폴트옵션 도입 후 연간 기대수익률이 5% 이상이라고 답한 바 있다.

■ <용어 설명> ▷ 디폴트옵션 : DC·IRP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지시가 없을 때 근로자가 사전에 정한 상품에 투자하도록 운용하는 제도다. 가입자가 별다른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고 총 6주가 경과하면 자동으로 디폴트옵션이 적용된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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