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자크기 설정

기사 상세

국제

獨, 가뭄이 불지른 인플레…마트 상품엔 `가격인상 예정` 표시

김덕식 기자

입력 : 
2022-08-25 17:46:56
수정 : 
2022-08-26 14:31:49

글자크기 설정

매경 한상 통신원 현지르포

지난달 식료품값 15% 급등
고유가에 운전자들 매일 한숨

정부, 대중교통 지원 나서자
지하철·버스 연일 북새통
에어컨 없어 쓰러지는 승객도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저축 못하는 가구 60%로 `쑥`
◆ 기후변화 신음하는 유럽 ◆

사진설명
유럽에 500년 만의 최악 가뭄이 닥친 가운데, 독일 뒤셀도르프 지역의 라인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내륙 운송의 중추인 라인강 수위가 낮아져 화물선이 제대로 운행되지 못해 독일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AP = 연합뉴스]
#1.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앞으로 제품 가격이 더 오를 예정입니다.' 독일의 마트 어느 곳을 가든 절반 이상의 물건 앞에는 이 문구가 적혀 있다. 전쟁에 이은 가뭄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물 부족까지 겹치면서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운전을 하는 독일인들은 한숨을 달고 산다.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비싸진 기름값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독일인들이지만 최근 물가 상승은 너무 가혹하다. 24일(현지시간) 독일 연방 내각은 다음달부터 공공건물 난방 온도를 섭씨 19도로 제한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복도, 로비 등 사람들이 이동하는 곳은 아예 난방 금지 구역으로 정했다. 지금까지 사무실에서 권장되는 최저 온도는 20도였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독일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독일인들에게는 혹독한 겨울의 예고일 뿐이었다.

독일 4인 가구 기준으로 가스 사용 가격은 지난해 연간 1301유로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3991유로 정도로 3배 이상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축소에 따라 가스 공급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독일 정부는 오는 10월부터 가스 사용 기업과 가정에 kwh당 2.4센트의 부담금을 매기기로 했다.

#2. 함부르크에서 기차를 타면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캠핑용 의자를 펴고 열차 화장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연착도 일상화됐다. 지난 6월 고물가에 신음하는 국민의 고통을 덜기 위해 정부가 '9유로(약 1만2000원) 티켓' 정책을 도입한 후 나타난 풍경이다.

9유로만 지불하면 한 달간 독일 전역의 버스와 기차(1등석과 ICE 등 고속열차 제외)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이 티켓이 인기를 끌면서 대중교통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한 번 탈 때마다 함부르크에서 2.23유로, 베를린에서 3유로를 지불하는 것을 감안하면 가격이 파격적인 9유로 티켓 덕분에 자가용 승용차 운전이 줄어들어 에너지 수요 감축에 도움이 됐고, 독일 전역 대기오염 수준이 6~7% 줄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시민들은 대중교통 혼잡에 따른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대중교통에 에어컨이 거의 없는 독일에서 승객이 대중교통으로 몰리면서 응급사고 발생도 빈번해지고 있다. 사우나 같은 열기가 느껴지는 버스나 열차에서 더위에 지쳐 쓰러지는 시민을 자주 볼 수 있다.

9유로 티켓은 독일 정부 재정에도 압박을 주고 있다. 독일 정부는 9유로 티켓을 통해 25억유로를 추가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치권에서는 연장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독일에 가뭄이 덮치면서 일상은 물론 산업생산마저 차질을 빚으면서 2008년 이후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물가가 치솟자 독일 가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독일의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 대비 7.5% 올랐다. 에너지 가격은 35.7%, 식료품은 14.8% 급등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독일 저축은행연합에 따르면 저축할 여력이 없는 가구의 비중이 지난해 16%에서 올해 60%로 대폭 늘어났다.

가뭄은 전력 생산 차질로 이어져 가뜩이나 부족한 에너지 수급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수력발전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물론 냉각수 부족으로 원자력발전도 여의치 않다.

라인강 수위가 낮아진 것도 치명적이다. 라인강은 서유럽 내륙 수상 운송의 80%, 독일 내 에너지(천연가스·석탄·원유) 운송의 30%를 담당하고 있어 라인강 운송이 6개월간 중단된다면 50억유로가량의 손실이 예상된다. 철도 수송에서 석탄·석유를 운반하는 열차가 여객 또는 화물 열차보다 통행 우선권을 갖도록 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화학 공장이 밀집한 독일 라인강 유역에서는 공업용수 부족으로 공장 가동률이 40~50% 수준까지 내려갔다.

앞서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지난 6월 중순부터 가장 중요한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을 통해 독일 등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가스관 용량의 40%, 지난달 27일에는 20%로 재차 줄였다. 가스프롬은 이달 말 가스관 수리를 이유로 가스 공급 중단을 예고했다. 유럽연합(EU)은 전체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수입해왔고, 독일은 그중에서도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55%에 달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23일 캐나다에 달려가 정상회담을 갖고 캐나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받을 수 있는지 타진했지만,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난색을 표했다.

[정일(4J콘셉트 대표) / 송유진(함부르크대 학생) 한상통신원 / 정리 = 김덕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