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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E플레이션 공포…"올겨울 난방이냐 식사냐 선택 내몰릴것"

박민기 기자

입력 : 
2022-08-23 17:48:53
수정 : 
2022-08-24 13: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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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급중단예고 후폭풍

네덜란드 TTF 가스선물 가격
장중 295유로…지난3월 육박
서방 제재에 벼랑끝 몰린 러
유럽行 가스관 볼모로 삼아

獨 물가상승률 두자릿수 우려
英 내년 1월 인플레 19% 전망
가구 3분의1 `연료빈곤` 예고
◆ 전세계 에너지 대란 ◆

사진설명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왼쪽)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회담 전에 대화하고 있다. 숄츠 총리는 액화천연가스 도입 및 수소 공급망 구축 등을 논의하기 위해 캐나다를 방문했다. [AP = 연합뉴스]
러시아가 자국을 겨냥한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면서 유럽이 혹독한 겨울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이 이달 말부터 사흘간 유럽 최대 가스 공급관인 노르트스트림-1을 폐쇄한다고 밝히면서 유럽 시장에서 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예정에 없던 이번 조치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가스 분쟁을 심화하고, 나아가 유럽의 경기 침체와 겨울용 가스 공급 부족 등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량을 조절하면서 유럽 시장에서 가스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이날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약 1년 전인 지난해 8월 23일 MWh당 26유로에 그쳤던 네덜란드 TTF 가스선물 가격은 올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급 부족 우려가 확산하면서 가파르게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인 지난 3월 초 MWh당 300유로 선까지 급등했던 TTF 가격은 지난주까지 최근 5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22일(현지시간) MWh당 276.75유로를 찍었다. TTF는 장중 한때 MWh당 295유로까지 치솟으면서 지난 3월 초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가스프롬의 이번 가스 공급 중단 발표는 유럽 국가들이 앞으로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기 위해 가스 등 충분한 연료 확보에 집중하는 와중에 나왔다. 러시아가 밝힌 이번 노르트스트림-1 폐쇄의 대외적 이유는 '가스관 압축기의 정기점검'이다. 가스프롬은 이번 정비 작업이 별다른 문제없이 완료될 경우 유럽으로의 가스 송출이 하루 3300만㎥ 수준으로 재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서방의 경제 제재로 막다른 길에 다다른 러시아가 유럽의 생명줄인 가스를 볼모로 삼고 위기에서 빠져나가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 수위가 높아지자 최근 몇 주 동안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량을 대폭 줄였다. 현재 노르트스트림-1을 통해 유럽으로 공급되는 가스는 기존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수차례 가스관 관리를 위한 장비 노후화 문제 등을 언급했지만, 독일은 이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속 에너지 가격을 올리기 위한 러시아의 정치공작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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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처럼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가스 공급 중단이 계속되면 러시아산 가스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인 유럽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유럽 국가 중 독일은 최근까지 자국이 수입하는 가스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독일의 대러 가스 의존도는 55%로 유럽연합(EU) 평균보다 높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곧 다가올 겨울을 앞두고 난방용 가스 공급량을 늘리기 위한 에너지 확보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그러나 러시아로 인해 가스 가격이 계속 오를 경우 유럽 국민들의 가계 지출이 늘어나고 유럽 내 인플레이션이 최고조로 치닫는 등 경제 피해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15% 감축하고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등 가스 수입처를 다변화할 것을 유럽 국가들에 권고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스프롬은 유럽 시장에서 올겨울 가스 가격이 60% 더 오를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을 제기했다. 가스프롬은 지난 16일 성명서를 통해 "지금처럼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 이어진다면 현재 1000㎥당 2500달러인 가스 가격이 올겨울에는 1000㎥당 400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 시장에서의 에너지 가격 급등은 경기 침체 우려와 소비자들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22일(현지시간) 월간 보고서를 통해 독일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올가을 물가 상승률이 10%대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분데스방크는 인플레이션 심화의 근본 요인으로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꼽았다.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 세계 각국 경제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영국에서도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씨티은행은 내년 1월 영국 물가 상승률이 18.6%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에너지 시장 자문업체 콘월인사이트는 내년 1분기 영국 전체 가구 중 3분의 1 수준인 약 1050만가구가 '연료 빈곤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홀거 슈미딩 독일 베렌베르크 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유럽의 다른 국가로 연결되는 또 다른 가스관을 추가적으로 폐쇄할 수 있다"며 "러시아의 즉각적인 가스 공급 감축은 독일 등 유럽 국가를 혹독한 겨울에 빠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디크 칸 영국 런던시장은 SNS를 통해 "우리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난방과 식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거나 둘 다 얻지 못하는 비극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에너지 가격 상한선 동결을 요구했다.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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