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자크기 설정

기사 상세

경제

상위 1% 부자들 1년만기 예금 늘려 [WEALTH]

문재용 기자

입력 : 
2022-08-05 17:43:15
수정 : 
2022-08-06 08:17:57

글자크기 설정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거주하는 100억원대 자산가 한 모씨(59)는 정기예금만 40억원이 넘는다. 그는 금리 인상기에 맞춰 한동안 3개월·6개월 만기 정기예금 비중을 늘려 뒀다가 최근 다시 1년 만기 정기예금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되며 금리 급등이 내년까지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자산시장 침체기, 초고액 자산가들은 '눈치작전'에 들어갔다. 호황기 때보다 더 자주 금융 전문가를 찾는다. 투자 위험을 최대한 피하면서 단 0.1%라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다. 자산가들은 금리 급등기 틈새 절세기법을 찾아내고, 모두가 금리 인상기 재테크에 혈안이 돼 있을 때 한발 앞서 금리가 하락세로 전환하는 시점을 가늠하며 투자에 나서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은 5일 국내 프라이빗뱅킹(PB) 대표 지점 4곳을 통해 억만장자들의 재테크 동향을 조사했다.

하나은행 Club1 PB센터, 신한은행 신한PWM PIB센터, KB국민은행 압구정스타PB센터, 우리은행 TCE본점센터는 각각 4대 시중은행 PB센터 가운데 운용자산 규모가 가장 큰 곳들이다. 하나은행 Club1 PB센터를 맡고 있는 김영훈 센터장은 "자산 규모가 수십 억원에 달하면 작은 우대금리를 놓친 탓에 연간 수천 만원의 손해를 볼 수 있다. 초고액 자산가들은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일반 투자자들보다 많은 고민을 한다"고 전했다.

초고액 자산가들은 지금 금리인상 대응한 짠테크 "당분간 단기예금·채권…초과수익 0.5%P면 충분"

대표 PB센터장 4인이 말하는
'슈퍼리치의 투자기법'
사진설명
금리 인상기이자 자산 침체기이다. 수십억 원대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들도 미세한 금리 차를 쫓는 '금융 짠테크'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정기 예·적금이나 대출, 우량 회사채처럼 금융자산 운용의 밑바탕이 되는 분야에서는 거액 자산가들이 일반 투자자보다 금리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투자·대출액 규모가 큰 탓에 소수점 단위 금리 차에도 연간 수백만~수천만 원의 손익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5일 매일경제신문은 억만장자들이 최근의 자산시장 침체에 대처하는 비법을 조사하기 위해 국내 프라이빗뱅킹(PB) 대표 지점 4곳(하나은행 Club1 PB센터, 신한은행 신한PWM PIB센터, KB국민은행 압구정스타PB센터, 우리은행 TCE본점센터)을 찾았다. 각각 4대 시중은행의 PB센터 가운데 운용자산 규모가 가장 큰 곳들이다. 가입 요건이 운용자산 규모 최소 30억원 또는 100억원인 거액 자산가 전문 점포이며, 강남에 위치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4곳의 운용자산 규모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총 13조1000억원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14조7000억원으로 1년 새 1조6000억원(12.2%)이나 증가했다.

지난 몇 년 새 자산시장의 변동성이 워낙 컸던 탓에 전문적 자산관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덕분이다. 인공지능(AI)·플랫폼 등 신산업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 급변하는 자산시장에서 큰 수익을 낸 투자자 등이 유입된 것도 최상류층 자산관리 시장의 성장에 일조했다.

사진설명
4개 지점의 센터장들은 자산시장이 침체에 빠져들었지만 오히려 억만장자들의 자산 상담 창구는 호황기보다 더욱 붐비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금리 시대를 맞아 예금·채권 등 안정적 투자처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국내에서 PB사업을 최초로 시작한 하나은행의 최대 점포 Club1 PB센터를 이끌고 있는 김영훈 센터장은 "모든 계층에서 금리 인상기 대처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초고액 자산가 계층은 한발 나아가 금리가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전환할 시점을 재며 이를 바탕으로 수익률을 높일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억만장자들은 자산가치 하락에 대한 대처법에서도 일반 투자자들과 차별화됐다. 김노근 신한은행 신한PWM PIB센터장은 "자산가 고객들은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덕에 자산 가격 하락기에도 내성이 강하고, 각자 설정해둔 포트폴리오에 따라 지금도 일정액을 고위험·고수익 투자처에 넣어 수익률 기댓값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 수익률 0.1% 높이는 데 집중
사진설명
지난 1년여간 은행들의 수신금리가 급등하며 3~6개월과 같이 만기가 짧은 정기예금에 막대한 자금이 몰려들었다. 당분간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는 탓에 가능한 한 만기를 짧게 가져가고, 3~6개월 후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정기예금에 재투자하는 전략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초고액 자산가들도 같은 전략을 활용해왔지만, 최근에는 1년 만기 정기예금을 납입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훈 센터장은 "내년까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금리가 오르기는 힘들다는 것을 감안해 자산가 고객들이 1년물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정기예금 6개월물과 1년물은 현재 금리 차이가 약 0.8%포인트인데, 같은 원금을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6개월물 투자가 1년물 투자와 같은 수익률을 올리려면 6개월 뒤 금리가 1.6%포인트 올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억만장자들은 은행들의 특판·우대금리 전략까지 염두에 두고 투자·대출을 조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훈 센터장은 "은행들은 자금 운용 여건상 정기예금 1년물에 특판금리를 조금 더 높게 적용하고, 조달금리가 올라갈수록 대출 시에 우대금리를 줄여 가는 경향이 있다"며 "금융 투자 경험이 많은 자산가들은 이 같은 배경지식을 미리 갖추고 예금·대출 금리를 최적화한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기를 맞이해 틈새 절세 효과를 노린 채권 투자도 등장했다. 채권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가 채권 표면금리를 기준으로 이뤄지는 것을 활용한 방식이다. 오웅섭 KB국민은행 압구정스타PB센터장은 "2년 전 발행된 3년 만기 채권과 지금 새로 발행되는 1년 만기 채권은 채권시장에서는 동등한 수익률을 제공한다. 그러나 과세 기준인 표면금리는 저금리 시대였던 2년 전 발행된 채권이 훨씬 낮아 절세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종합소득세 최고 과표 구간의 세율이 50%에 육박(지방세 합산)하는 것을 감안하면 최종 수익률에 상당히 큰 차이가 발생한다. 지금처럼 금리가 급등한 시기에만 활용할 수 있는 절세 기법"이라고 전했다.

오웅섭 센터장은 "올해 들어 주식이 크게 하락한 것을 감안해 주가연계증권(ELS) 가입을 문의하는 고객들도 많아졌다"며 "고점 대비 이미 30%가량 주식이 빠져 있는 현재 상태에서 또다시 주식이 반 토막 나지 않는 한 높은 수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오 센터장은 "현재 ELS 상품들은 7~8%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진입장벽도 높지 않아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복례 NH농협은행 NH All100자문센터장은 "NH농협은행의 전체 고객층 특성을 따라 초고액 자산가 고객도 지방에 거주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각종 특판 상품에 대한 정보를 챙겨 정기예금에 가입하려는 문의가 많다"고 했다.

◆ 시장 침체에도 포트폴리오 흔들지 않아
사진설명
신한PWM 패밀리오피스 반포센터 내부 와인바 전경. [사진 제공 = 신한은행]
신한은행의 경우 다른 3개 은행과 달리 투자금융(IB) 자문에 특화된 신한PWM PIB(Private Banking+Investment Banking)센터가 운용자산 규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상품에 강점을 지녔고, 이 같은 상품을 선호하는 성향의 고객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타행 1위 지점들이 오랜 역사를 지닌 것과 달리 2019년 말 출범한 PIB센터가 신한은행 최대 PB지점에 올라선 것도 시장을 차별화한 성과로 해석된다. 고수익 투자처를 선호하는 신한PWM PIB센터 고객들 사이에서도 현재 시장 상황을 감안해 안정적 투자처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역머니무브'(고위험·고수익 투자처에서 안정적인 정기예금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와 같은 현상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김노근 센터장은 "현재 금리 수준이 정점은 아니더라도 어깨 수준에는 도달했다는 판단하에 기업 채권들을 매입해 향후 금리가 하락했을 때 매매 차익을 노리거나, 증시 여건이 불투명한 지금도 비상장 주식을 매입하고 싶다는 주문이 꾸준히 들어온다"고 전했다.

김 센터장은 "일반 투자자들이 많이 활용하는 정기예금은 중간에 해약할 경우 손해를 봐야 하는데, 자산가들은 채권투자를 통해 정기예금과 비슷한 효과를 누리면서도 자금 유동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거액 자산가들은 금융 투자에 대한 경험치도 많고, 위험·안전자산에 자금을 일정 비율씩 배분하는 포트폴리오 투자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금리 기준을 꼼꼼히 따지면서도 자신에게 맞는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것은 초고액 자산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참고할 만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박일건 우리은행 TCE본점센터장은 "자산가들은 주식시장 하락장세에서도 일정액을 적립식으로 꾸준히 매입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통해 지난 한 달간 상승장세에서 손해액을 일정 부분 회복할 수 있었다"며 "손해를 인내하고 합리적 근거에 따라 투자할 수 있는 성향이 하락장세에서도 손해 규모를 줄여주는 양상"이라고 밝혔다.

[문재용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