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자크기 설정

기사 상세

경제

"당장 생활비 급한데"… 대출 막히고 카드 한도까지 싹둑

명지예 기자

최근도 기자

임영신 기자

입력 : 
2022-12-29 17:46:02
수정 : 
2022-12-29 19:30:46

글자크기 설정

저신용자·서민 먼저 덮친 불황 공포
◆ 세밑경기 한파 ◆
사진설명
새해를 앞두고 제2금융권 회사와 대부 업체가 신용대출을 중단하면서 서민 돈줄이 얼어붙고 있다. 카드사의 경우 카드론 한도는 물론 신용카드 이용 한도까지 대폭 축소하고 나섰다. 금리 인상 여파로 조달 비용이 치솟은 가운데 내년 경기가 나빠지면 다중채무자의 연체 위험이 커질 것으로 보고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다. 금융권에 불어닥친 고금리와 경기 침체 위기감이 서민 취약계층을 가장 먼저 강타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권의 이 같은 대출 조이기는 가뜩이나 축소될 조짐을 보이는 서민층의 소비 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29일 제2금융권에 따르면 토스를 비롯해 대출 비교 플랫폼을 통한 신규 신용대출이 대부분 중단됐다. 실제 토스에 따르면 제휴 금융사 56곳 중 20곳이 내부 시스템 점검을 이유로 연말까지 대출 금리와 한도 조회 결과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SBI저축은행, 웰컴저축은행 등이 외부 플랫폼을 통한 신용대출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저축은행은 가계대출 총량 규제 한도가 차서 대출 관리에 나섰고, 내년 초 외부 플랫폼을 통한 대출을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카드사와 캐피털사도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현대카드는 최근 연체율 상승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고객의 카드 한도를 크게 낮췄다. 신용카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한도 하향에 대한 불만이 올 4분기 들어 부쩍 늘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연체율이 다소 올라갈 수 있어 위험해 보이는 고객부터 줄였다"면서 "워낙 보수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일부 고객의 원성이 나오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금리 대출인 '카드론'은 카드 한도보다 더 빠르게 영업을 줄이고 있다. 카드사들은 카드론 금리부터 올렸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 등 7개 전업카드사의 카드론 평균 금리는 연 14.84%로 집계됐다. 카드론 평균 금리가 14%를 넘은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평균 금리가 가장 높은 우리카드의 경우 금리가 연 16.99%에 달한다. 법정 최고 금리가 20%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카드론을 쓰지 말라는 얘기다. 지난달 기준 7개 전업카드사 카드론 잔액은 34조2866억원으로 한 달 새 5456억원이 줄었다.

사진설명
캐피털 업계 1위인 현대캐피탈도 지난 28일 토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핀다를 비롯한 플랫폼에서 신규 대출 영업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현대캐피탈은 "조달 환경 악화 등으로 신규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영하게 되면서 다소 회수율이 떨어지는 대출 상품을 줄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서민의 '최후의 보루'인 대부 업체 역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대부 업계 1위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는 지난 26일부터 모든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민은 이자 부담이 계속 커지고 대출까지 받기 어려워지면서 자금 사정이 꽉 막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자영업자 강 모씨는 "연말에 급한 돈이 필요해 은행, 저축은행, 캐피털사를 돌아다녔지만 모두 대출을 거절당했다"며 "사채를 알아봐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서민의 대출 절벽 문제가 심각해지자 금융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과 대부 업체에 유연한 대응을 당부했다. 또 우수 대부 업체의 은행권 차입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은행권의 협조를 요청했다.

상황이 어렵기는 상호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최근 충북에 위치한 청주상당신협은 연 2.5%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고객 136명(대출 금액 342억원)에게 연 4.5%로 금리 인상을 통보했다가 철회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해당 신협은 여신거래기본약관 제3조 3항을 제시하며 기준금리 인상을 비롯한 금융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다며 '고정금리 인상' 이유를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은 해당 약관이 현재 시장 상황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조치에 나섰다. 금감원은 "해당 신협 지점에 의견을 전달해 고정금리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다"며 "은행권과 각 상호금융권 중앙회에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관리를 강화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금융권에선 횡령 사고도 줄을 잇고 있다. 대표 고소득 직장인 금융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이다. 지난주 부산은행에서는 내부 통제 시스템을 통해 2억원 규모의 이상거래를 포착했다. 한 영업점 직원 A씨가 지인의 서명을 위조해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자체 조사를 실시 중이다. 최근 저축은행 업계 2위인 한국투자저축은행에서도 8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4월 우리은행 직원이 약 6년에 걸쳐 회사 자금 707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돼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앞서 KB저축은행 94억원, 모아저축은행 54억원, 페퍼저축은행 3억원, OK저축은행 2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가 적발된 바 있다. 단위농협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29억원을 횡령한 직원이 적발돼 기소됐다. 지난 4월에는 송파새마을금고 직원이 16년간 3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각 금융권에서는 횡령 사고 방지를 위해 내부 통제 전문인력을 보충하고 정기·수시 검사 빈도를 늘리는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명지예 기자 / 최근도 기자 / 임영신 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