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구현모 KT 대표의 차기 대표이사 단독후보 선정에 제동을 걸면서 구 대표의 연임에 '빨간불'이 켜졌다. 구 대표가 이른바 '셀프 연임' 논란을 돌파하기 위해 복수 후보와 경선을 택하고 28일 이사회 문턱을 넘었음에도 국민연금은 공정한 경선 원칙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논리로 반대 의결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지난 3월 주총을 앞두고 박종욱 KT 경영기획부문 사장 역시 국민연금의 반대에 부딪혀 자진 사퇴한 바 있어 차기 KT 사령탑 선정이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KT는 이날 국민연금이 제기한 후보 결정 절차 문제에 대해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내부적으로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단독후보 선정 후 주요 주주 설득에 나서겠다는 계획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구 대표가 연임 의사를 밝히면서 KT는 정관에 따라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현직인 구 대표에 대한 우선 심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연임 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구 대표 스스로 여러 후보와 경쟁하겠다고 역제안하며 추가 심사가 이뤄졌다. 이는 최근 국민연금이 KT를 비롯한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면밀한 검증과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예고한 점을 의식한 행보였다.

대표이사후보심사위는 구 대표를 최종 후보자로 낙점한 근거로 지난 3년간 과감한 기업 '체질 개선'을 통해 실적을 크게 개선시킨 점을 들었다. 취임 당시와 비교해 지난달 말 기준 KT의 주가는 90% 상승했다. 올해 서비스 매출 역시 사상 처음으로 16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구 대표는 이번 면접 과정에서 디지털플랫폼(DIGICO)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다양한 성장 전략과 실행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끝내 구 대표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발을 피할 수 없었다. 국민연금 측은 구 대표의 단독후보 최종 확정 직후 이례적으로 자료를 내고 "(KT의) 최고경영자(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내년 주총까지 석 달 안팎의 시간이 충분히 남았음에도 12월 한 달 사이 현 CEO 단독 우선 심사라는 절차가 가동되고 다른 경쟁 후보들을 추가로 선정해 검토한 게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신임 기금운용본부장이 KT 등을 겨냥해 셀프연임 문제를 거론한 지 불과 하루 만에 KT 이사회가 열려 구 대표를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며 KT 이사회 결정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재계는 4년 전 정부가 노골적으로 연임 반대를 외쳤던 KT&G 사례가 향후 KT 주총에서 재연될지 여부에도 주목하고 있다. 2018년 KT&G 주총에 앞서 2대주주인 IBK기업은행은 당시 백복인 사장의 연임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지금의 국민연금과 같은 논리로 IBK기업은행의 대주주인 정부(기획재정부)가 민영화한 공기업 CEO의 셀프 연임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IBK기업은행의 연임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당시 KT&G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연임안은 주총을 통과했고 정부는 체면을 구겨야 했다.

[이재철 기자 / 우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