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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제로 불붙은 빙하의 나라 … 지구의 인공허파가 365일 돈다

이새하 기자

입력 : 
2022-12-25 17:34:33
수정 : 
2022-12-25 19: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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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탄소포집공장
아이슬란드 '오르카' 가보니
◆ 그린시프트가 미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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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모으는 탄소포집 장치 모습. 2 포집한 탄소를 물과 섞어 땅속에 저장하는 시설. 3 저장한 이산화탄소는 돌처럼 굳어진다.
이달 초 방문한 아이슬란드. 해가 짧고 밤이 긴 겨울로 유명한 곳이다. 오전 9시에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아이슬란드 케블라비크 국제공항에서 차로 1시간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헤들리스헤이디(Hellisheiði). 어스름한 하늘 아래 용암대지가 광활하게 펼쳐진 곳이다. 분출한 용암이 땅을 덮은 뒤 서서히 식으면서 평야가 생겼다.

오전 10시 30분쯤 되자 먼 산에서 동이 트면서 직접 탄소포집 공장인 '오르카(Orca)'의 모습이 드러났다. 거센 비와 우박이 번갈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공기 속 이산화탄소를 잡아내는 모듈형 탄소포집장치 8개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포집장치 속 팬이 '윙' 하고 돌면서 공기를 빨아들인다. 공기가 장치 속 필터를 통과하면 이산화탄소만 남는다.

필터가 탄소로 가득 차면 포집장치가 멈추고 약 100도로 탄소가 가열된다. 고농축 탄소를 모으기 위해서다. 이렇게 모인 탄소를 물과 함께 섞어 땅속에 주입하면 현무암이 탄소를 빨아들여 영구 저장한다. 이러한 과정이 탄소포집이다.

특별한 사람의 손길 없이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오르카는 연간 4000t 상당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나무 한 그루당 연간 2.5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을 감안하면 1600그루를 심은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오르카는 스위스 스타트업인 클라임웍스가 2021년 9월 세운 전 세계 최초의 대규모 직접 탄소포집 공장이다.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우리나라에 필수 기술로 꼽힌다. 탄소포집 기술은 크게 탄소 포집·활용(CCU)과 직접 공기포집(DAC)으로 나뉜다. CCU는 발전소나 공장 등 고농도 이산화탄소 배출시설에서 탄소를 걸러내는 기술이고, DAC는 공기 중에서 탄소를 잡아내는 기술이다.

클라임웍스는 2009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를 다니던 얀 뷔르츠바허와 크리스토프 게발트가 손잡고 만든 스타트업이다. 클라임웍스의 이사이자 커뮤니케이션장인 율리 고살베즈는 "창업자들이 스위스 알프스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을 직접 목격하며 큰 충격에 빠진 이후 클라임웍스를 세웠다"면서 "기술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공기포집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클라임웍스가 탄소를 모으는 역할을 한다면 탄소를 영구 저장하는 것은 아이슬란드 기업인 카브픽스의 몫이다. 이글루처럼 생긴 공간에서 카브픽스는 탄소를 물에 녹여 땅에 주입한다. 땅속 이산화탄소는 2년 안에 광물화된다.

고살베즈 커뮤니케이션장은 "탄소가 돌로 변하는 과정은 탄소가 현무암과 반응해 몇 년 안에 단단한 광물이 되는 자연적 과정과 같아 안전하다"고 말했다.

클라임웍스가 아이슬란드에 오르카를 짓기로 한 것은 재생에너지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는 지열과 수력발전 등 재생에너지로 전체 전력을 자급자족하는 나라다. 오르카에서 차로 1분 정도 거리에 있는 레이캬비크 지질 에너지 공기업 '온파워'에서 생산한 전력으로 공장이 움직인다. 오르카 주변에는 온파워에서 뻗어나온 긴 파이프라인이 사방으로 퍼져 있다. 클라임웍스가 처음 탄소포집 기술을 개발했을 때는 시장이 갓 시작한 단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탄소포집부터 활용, 저장 등이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에 탄소포집을 포함했다.

이미 전 세계 탄소포집·활용·저장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BCC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26억달러(약 3조4000억원)에 불과했던 탄소포집 관련 시장은 2026년 52억달러(약 6조77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영국, 일본, 독일 등 주요 국가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을 모두 핵심 전략 수단으로 보고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클라임웍스의 기술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등 세계 기업들도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스위스리와 캐나다 전자상거래 기업 쇼피파이, 독일 완성차 업체 아우디 등도 클라임웍스 고객이다.

고살베즈 커뮤니케이션장은 "우리의 기업 고객은 과학을 기반으로 한 '넷 제로(net zero·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 목표를 가졌다"며 "야심 찬 탄소 배출 감소 계획을 갖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힘쓴다"고 했다.

클라임웍스는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구독 서비스도 운영한다. 넷플릿스나 유튜브를 이용하듯이 개인이 탄소 감축 서비스를 구독하는 방식이다.

기술 상용화의 장애물은 탄소포집에 드는 '비용'이다. 현재 클라임웍스는 개인에게 탄소를 t당 1200달러(약 155만원), 기업에는 t당 600달러(약 77만원)에 판매한다. 2030년엔 이 가격을 각각 t당 200달러(약 26만원)로 낮추는 게 목표다. 비용을 줄이려면 공장을 확대해 탄소포집 양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클라임웍스는 지난 6월 아이슬란드에 두 번째 DAC 공장인 '매머드'를 세운다고 발표했다. 오르카에서 차로 1분 거리에 있는 공장도 건설이 한창이었다. 연간 3만6000t 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크기다.

고살베즈 커뮤니케이션장은 "지속적으로 규모를 키우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핵심 요소"라며 "DAC 산업을 함께 추진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강력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클라임웍스의 목표는 야심 차다. 고살베즈 커뮤니케이션장은 "클라임웍스는 2025년까지 GT(기가톤) 규모의 탄소 제거 용량에 도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현재 노르웨이와 오만, 미국 등에 추가 발전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들리스헤이디(아이슬란드)/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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