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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력난 시달리는 물류센터 … 쉬쉬하며 무자격 외국인 고용까지

박나은 기자

입력 : 
2022-12-22 17:41:34
수정 : 
2022-12-22 18: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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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안되는 비자 소지 많아
취업 가능한 비자 가졌어도
허용한 근로조건 잘 안지켜
유학비자로 '편법' 종일근무
쿠팡 도급사 운영하는 곳도
수백명 불법고용 정황 포착
◆ 외국인 고용 확대 ◆
사진설명
서울 시내 한 쿠팡물류시설에서 작업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작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한 대형 물류센터에서는 유학생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 수십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학업 목적으로 입국했지만 어학원에 등록만 해 놓고 수업을 듣는 대신 대부분 시간을 물류센터에서 일한다고 한다. 유학생 비자를 갖고 있는 외국인의 경우 주20시간까지 일할 수 있지만 이를 넘기는 것은 불법이다. 외국인 노동자 A씨는 "어학원 학비보다 일해서 버는 돈이 더 많아 이런 방식으로 대부분 일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유학생 비자로 들어오는 게 편해 이 방법을 최근 많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업무 강도가 높고 임금이 낮아 내국인이 취업을 기피하는 가운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폭발하는 물류 수요로 극심한 인력난을 겪는 물류업계에서 외국인 근로자 불법고용이 암암리에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할 수 없는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을 고용하기도 하고, 외국인 유학생들도 합법적으로 근무 가능한 주2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도록 하는 게 대표적이다. 극심한 인력 수급 미스 매칭으로 대형 업체들도 사실상 불법으로 내몰리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의 전국 100여 곳 물류센터와 캠프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파악된 규모만 2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루 일하고 일당을 받아 가는 단기직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에는 물류시설에서 일할 수 없는 방문동거(F-1), 재외동포(F-4), 특정 활동(E-7) 등 비자를 소유한 외국인도 다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경제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월 인천에 있는 쿠팡 물류캠프에서는 방문동거 비자의 카자흐스탄인, 재외동포 비자의 우즈베키스탄인, 카자흐스탄인, 베트남인 다수가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소재 물류캠프에서도 베트남, 러시아 국적의 방문동거·재외동포 비자를 가진 외국인들이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할 수 있는 비자를 가지고 있어도 허용한 근로 조건을 지키지 않는 사례도 다수였다. 유학·어학연수(D-2, D-4) 비자 소유자의 경우 무늬만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편법으로 종일 근무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유학 비자, 어학연수 비자 소유자는 학교 측에 허가받은 뒤 한국어 자격증이 있을 경우 주중 최대 20시간(성적 우수 시 25시간)을 근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어학연수 과정으로 들어와 수업을 받지 않고 시험만 치르며 학적을 유지한 채 종일 근무하고 있었다.

이 같은 실태를 매일경제에 제보한 내부고발자는 "지난 8월부터 물류 업무가 폭증하자 이 같은 외국인 불법고용이 크게 늘었다"며 "최근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용역업체에 외국인 채용을 요청해 인력을 수급받은 뒤 기록이 남지 않게 일당을 현금으로 당일 지급했다"고 말했다.

특히 배송 전 분류 작업을 맡는 시설인 쿠팡 캠프의 경우 쿠팡과 계약을 맺은 도급사가 운영하면서 인력 수급과 비용 절감을 위해 외국인 근로자 불법고용이 성행하고 있었다.

쿠팡 물류 업무를 대행하는 한 도급사 관리자는 "인력 수급을 충분히 못하면 본사에서 계약을 해지당하기 때문에 도급사는 임금이 더 비싸고 고용이 까다로운 내국인 대신 외국인 인력을 불법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보자는 "쿠팡은 본사 소속 직원을 직접 캠프 현장에 파견해 관리하고 있지만, 이같은 불법고용을 알면서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쿠팡 본사와 자회사는 출입국관리법 등 관련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고, 적법한 비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외국인은 채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도급사의 외국인 근로자 불법고용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이어 "쿠팡은 고용, 이민법 규정을 포함해 모든 법적 의무 사항 준수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전문 HR 파트너업체와 일하며, 고용 및 노동법에 따라 해당 업체의 채용 및 인사 관리에 있어 개입 또는 관리 감독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본사와 자회사, 자회사와 도급사 간 계약 관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불법 여부를 입증할 책임은 원도급인 본사에 있다"며 "본사와 자회사가 도급사에 인력 고용을 맡겼으니 구조상 모두에 불법 도급·파견에 대한 책임이 있고, 책임 소지를 물을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체류 자격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을 직접 고용한 경우 출입국관리법 제18조 제3항(외국인 고용의 제한)이 적용될 수 있다"며 "개별적·구체적 사정에 따라 이와 같은 고용에 가담한 것이 인정된다면 공범으로 의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같은 불법 외국인 노동자 고용은 쿠팡만의 사례는 아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현장에서 일자리가 부족해 외국인 직원들을 불가피하게 채용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재 수많은 택배·유통 회사들이 업무 위탁을 맡기는 도급사가 운영하는 물류 현장에선 몽골, 필리핀 등 여러 나라 외국인을 상당수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물류업계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택배 상·하차 업무에 한해 방문취업(H-2) 비자 소유자의 고용을 허가했다. 그러나 해당 비자 소유자는 매일경제가 확인한 또 다른 물류업체의 사업장에서 전체 외국인 중 10% 미만으로 극히 드물었다. 비전문직 취업(E-9) 비자 소유자의 경우에도 최초 비자를 발급받은 업종 및 지정된 근무처에서만 근무해야 하지만 이 요건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물류업체에서 근무 가능한 서비스업이 아닌 타 업종 비자를 발급받은 이들이 많았고, 업체들도 이들의 고용 허가를 받은 경우가 적었다. 물류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외국인 비자가 극히 한정적인 상황에서 대부분 불법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외국인들에게 취업 통로를 넓히고 국내 택배사들도 다양한 인력을 고용할 기회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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