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날 공개한 12나노 16기가비트(Gb) DDR5 D램은 지금까지 업계에서 공개된 공정 중 가장 앞서 있다. D램 공정은 10나노대에서 시작해 기술 경쟁을 거쳐 현재 4세대(1a)를 지나고 있다. 12나노 D램은 5세대(1b) 공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나노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뜻한다. 선폭이 좁을수록 성능이 뛰어나고 효율이 높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칩 크기가 작아지면 같은 면적 웨이퍼 안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어 가격 경쟁력과도 연결된다.
기존 DDR5는 14나노급이었는데, 이번 신제품은 12나노급 D램이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기술 개발이 어려워 1b를 건너뛰고 다음 세대인 1c D램을 개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이 지난 4월 열린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을 정도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12나노급 D램 개발에 성공한 만큼 향후 DDR5 시장에서 기술 주도권을 쥐게 됐다. 후발 주자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도 12나노급 D램 개발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삼성전자 12나노 D램의 또 다른 특징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멀티레이어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수십 개 층(레이어)으로 구성돼 있는데, 층마다 노광·식각 등 주요 공정을 거친다. 삼성전자는 수십 개 층 가운데 5개 층 노광 공정에 EUV를 활용해 경쟁사보다 정교한 회로를 구현했다.
이런 삼성전자의 미세공정 기술은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는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EUV 장비를 확보하는 게 반도체 미세 공정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EUV 장비는 대당 가격이 약 3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이지만, 반도체 기업들은 없어서 못 구하는 상황이다.
이에 맞서 지난달 미국 마이크론이 1베타(1β) 공정을 적용한 LPDDR5X를 공개했다. EUV 장비 대신 자체 개발한 '멀티패터닝'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반도체업계에선 "멀티패터닝 기술이 EUV 미세공정 기술력을 따라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상당수다. SK하이닉스는 1개 층에만 EUV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반도체 시장은 밝지만은 않다. 올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반도체 한파가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시장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9일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이 5조원대로 주저앉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특히 반도체 부문 이익을 전년 같은 기간보다 83% 쪼그라든 1조5000억원으로 예상했다. 증권가에선 SK하이닉스가 4분기부터 영업적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삼성전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불황의 파고를 넘을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우선 1위를 공고화하기 위해 이날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12나노급 D램을 내년 양산한다. 메모리 반도체의 또 다른 축인 낸드플래시 개발도 이어진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10월 '삼성 테크데이 2022'에서 2024년 9세대 V낸드 제품을 양산하고, 2030년 1000단 V낸드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새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