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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회생보다 차라리 파산"… 고금리에 재기할 마음 꺾였다

고재만 기자

양연호 기자

입력 : 
2022-12-20 17:42:10
수정 : 
2022-12-20 18: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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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산 내몰리는 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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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20년 동안 유아용품 유통업을 하던 A사는 최근 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다. 코로나19 사태로 매출과 이익이 급감하더니 결국 수입대금 1억3000만원을 연체하게 된 것이다. 주거래은행으로부터 대출금 상환 압력을 받자 A사는 결국 회사 자산을 모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A사 관계자는 "최근 2년 넘게 매출이 급감한 반면 부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었고, 설상가상으로 최근엔 금리까지 급등해 이자를 갚기 힘들 지경"이라며 "20년 동안 잘나가던 회사가 2년 만에 이렇게 추락한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에 있는 B사 공장에는 '공장 팝니다' '장비 매각' 등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한때 수출기업 표창까지 받은 회사였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매출은 5분의 1로 급감했다. 작년과 올해 법인회생을 신청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회생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발주처들이 거래를 끊기 시작했다. 신규 매출이 일어나지 않자 B사 측은 본사 사옥은 물론, 공장 용지도 매물로 내놨다.

경기침체와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위기 여파로 중소기업이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20일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897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848건보다 5.7% 늘었다.

중소기업이 파산에 이르는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수입대금을 연체하게 되고, 금융권의 대출금 상환 압력도 급증한다. 결국 중소기업은 지급 불능 상태로 전락하고, 파산을 신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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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와 금융권에서는 법인파산 신청이 회생 신청보다 크게 급증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1월까지 법인회생 신청 건수는 모두 58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645건보다 9.5% 감소했다. 2020년 같은 기간 809건에 비하면 27.8%나 급감했다. 회생은 일시적인 자금난을 극복하고 사업을 계속 영위할 목적으로 신청하지만, 파산은 모든 사업을 종결시키고 회사 존재를 말소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경제위기가 닥치더라도 사업을 완전히 접는 파산보다는 법원 주도하에 채무변제계획을 세워 재기하는 회생이 더 많았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처음으로 파산이 회생을 앞섰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법인회생 신청이 줄고 법인파산 신청이 늘었다는 것은 벌어서 부채를 갚는 것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향후에도 계속 경제가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재기 의지를 스스로 꺾은 중소기업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초동의 한 파산전문 변호사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 직격탄을 맞은 요식업, 예식장, 여행사 등 업종에서 문의가 많았는데 올 하반기 이후 3고 위기가 가속화되면서는 업종을 불문하고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작년까진 회생 문의가 더 많았는데 지금은 70% 이상이 파산 문의라는 점이 달라진 점"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당분간 3고 위기가 개선될 여지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고금리가 중소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된다. 지난 10월 기준 중소기업 평균 대출금리는 5%를 돌파해 10년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소기업 대출 중 금리가 5% 이상인 대출 비중은 70%에 육박해 단 1년 만에 20배 이상 급증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연초부터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75%포인트 오르는 동안 실제 중소기업 조달 금리는 연초 2.9%에서 5.1%로 2.2%포인트 상승했다"며 "앞으로 금리가 2~3%포인트 더 오르면 원리금 상환이 어렵다고 보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고금리 여파로 '돈맥경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진 기업의 '흑자 도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중소기업들은 필요 자금의 40% 수준밖에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의 필요 자금 대비 확보 자금 비중은 21~40%(34.8%), 0~20%(28.3%), 41~60%(21.8%), 61~80%(10.8%), 81% 이상(4.3%) 등 순이었다. 전체 응답기업의 63.1%가 필요 자금의 40% 수준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울산 소재 변압기 부품업체 C사 관계자는 "이자 비용 부담은 둘째 치고 3억원 대출이 필요했는데 1억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금경색에 대한 불안은 지방 중소건설사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분양을 통한 자금 조달이 힘들다.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 여파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마비된 상태다. 중소건설사의 위기는 가구, 인테리어, 주택설비, 이사 업체들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이자 부담 증가와 돈맥경화로 인해 대출이 막히고 대출 연장이 되지 않을 경우 한계기업뿐만 아니라 흑자기업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도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금융권은 과도한 대출 금리 인상을 자제하고, 정부는 저금리 대환대출 등 적극적인 금융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만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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