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자크기 설정

기사 상세

사회

'재정지원'으로 대학 통제 안해…지방대 학과 신설 쉬워진다

박윤구 기자

입력 : 
2022-12-16 17:36:08
수정 : 
2022-12-16 19:33:33

글자크기 설정

교육부 대학규제 개혁 추진
3년마다 실시하던 대학평가
대교협 기관인증으로 대체
부채비율·운영손실 등 평가
대학 자율로 학과 설립·폐지
등록금 규제 완화는 제외
인기학과 쏠림 심화 우려도
사진설명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 수도권 쏠림 현상 등으로 '대학 공멸' 위기감이 커지자 당국이 인위적인 구조조정 대신 자율적인 대학 혁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원격수업 확대, 대학 간 자원공유, 탄력적인 구조 개선을 위해 1996년 제정된 대학 설립·운영 규정을 대폭 손질하고, 1조2000억원 규모의 일반재정지원이 걸린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없애기로 했다.

교육부는 2024학년도부터 교원 확보율 요건을 완전히 폐지해 대학이 총입학 정원 범위 내에서 완전히 자율적으로 학과(부)별 정원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는 대학이 학과 간 정원을 단순 조정하는 경우에도 전년도 또는 3개 연도 평균 이상의 교원 확보율을 유지해야 했다. 다만 국·공립대는 정원 조정 시 교육부에 사후 보고해야 한다.

지방 대학에는 결손 인원이나 편입학 여석을 활용해 분야와 관계없이 새로운 학과를 신설할 수 있는 특례가 주어진다. 현재는 첨단 기술 분야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됐지만, 앞으로는 학생 모집난을 고려해 전 분야로 확대 적용된다.

첨단 기술 분야에 한해서 대학 정원을 늘릴 수 있는 길도 열린다. 대학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4대 요건(교사·교지·교원·수익용 기본재산)을 100% 충족해야 했지만, 첨단 기술 분야에 한해서는 교원 확보율 기준만 충족해도 증원이 가능하다. 전문대학원 신설을 위한 교원 확보율, 교사시설 등 확보 기준도 완화된다. 또 교육부는 대학이 유휴 재산을 활용해 경영난을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 운영 기준을 완화한다. 대학 시설과 건물(교사)은 인문사회(현행 기준 학생 1인당 면적 12㎡)를 제외한 나머지 자연·공학·예체능 계열의 기준 면적을 17~20㎡에서 14㎡로 조정한다. 또 기존 시설 기준을 충족한 대학이 추가로 교육·연구시설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건물을 임차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토지(교지)는 대학 설립 시 적용되는 기준이 아니라 건축관계법령, 관할 지역 조례상의 건폐율·용적률에 따라 건물 면적에 필요한 토지만 확보하면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기준이 완화될 예정이다. 최근 서울시가 대학 용적률 완화를 골자로 한 '대학 도시계획 지원 방안'을 발표한 만큼 향후 서울 지역 대학들의 연구시설 확대가 예상된다.

사진설명
한 사립대 총장은 "서울시가 용적률 완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교육부의 대학 설립·운영 규정 완화 없이는 신규 연구시설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비대면 교육이 이미 활성화됐다. 일률적으로 교사·교지 조건을 요구하는 현행 규정은 교육 현장과 맞지 않는 낡은 규제"라고 말했다. 교원의 경우 일반대학의 겸임·초빙교원 활용 가능 비율이 현재 5분의 1 이내에서 3분의 1 이내로 확대된다. 수익용 기본재산은 학교법인이 수익을 창출해 대학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동안 기존 캠퍼스의 교사·교지 확보율이 100% 이상인 경우에만 대학이 일부 학과를 새로운 캠퍼스로 이전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새 캠퍼스의 시설 여건만 갖추면 이전이 가능해진다. 대학이 전문대학, 산업대학 등과 통합할 경우 정원을 감축하도록 한 현행 조건을 삭제해 대학 간 통폐합도 촉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교육부는 2015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대학기본역량진단'을 2021년 평가를 마지막으로 폐기한다. 2025학년도부터는 사학진흥재단의 재정진단에 따른 '경영위기대학',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의 기관평가인증에서 미인증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일반재정을 지원한다.

'대학 살생부'라 불리는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정부 주도의 획일적 평가로 대학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일선 대학의 대응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특히 지난해엔 인하대와 성신여대 등이 탈락하면서 재학생, 동창회 등은 물론 지역사회까지 일제히 반발하며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중대한 비위가 발견된 대학에 대해서는 엄정 처분하고 고발·수사 의뢰를 통해 사법적 조치가 취해지도록 할 것"이라며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협약 해지, 지원 중단, 사업비 수혜 제한·국가장학금 지원 제한 등의 강력한 제재를 적용해 대학의 책무성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번 발표에 14년째 동결된 등록금 규제 완화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학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인상에 따른 서민 경제의 충격을 우선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대학의 자율적인 정원 조정으로 인문계 위기가 가속화되고 인기 학과 쏠림 현상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윤구 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