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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美가 투자 원해놓고 …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 달라"

이영욱 기자

입력 : 
2022-12-16 17:36:36
수정 : 
2022-12-16 1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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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멕시코는 인건비와 생산비 등 모든 것이 훨씬 저렴하다. 회사가 그 가능성을 다시 검토하기로 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15일(현지시간) 공개된 로버트 후드 현대자동차 정무 업무 담당 부사장의 발언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현대자동차그룹의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가 아닌 관련 기업 고위급 인사가 실명으로 공식 석상에서 작심 발언을 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IRA는 북미산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해 한국산 전기차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상태다.

후드 부사장의 발언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이 IRA 발효 후 미국시장에서 경쟁사에 밀려 전기차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IRA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주)이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며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직접 서한까지 보내면서 한국 자동차업계에 불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후드 부사장의 발언은 현대차그룹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현대차그룹으로선 일종의 '배수진'을 친 셈이다.

포드의 올 1~11월 미국 전기차시장 점유율은 7.8%로 현대차·기아를 제치고 전체 2위를 기록했다. 포드는 지난달 점유율 8.6%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포인트 늘어났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차 판매가 급감하면서 전체 판매량은 7.8% 줄었지만, 전기차 판매량은 오히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물론 현대차·기아도 신형 니로EV와 코나EV의 출시와 기저효과 등에 힘입어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7.7% 늘었지만, 아이오닉5와 EV6 등 주력 차종 판매량은 줄었다. 아이오닉5와 EV6 등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미국 판매량은 지난 7월부터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 11월 아이오닉5 판매량은 1191대로 10월(1579대)에 비해 24.6% 줄었다. EV6는 지난달 641대가 판매돼 10월(1186대)보다 46% 감소했다. 아이오닉5의 판매량은 지난 6월 2853대로 정점을 찍은 뒤 7월부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EV6도 정점을 찍은 올해 3월(3156대) 이후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한 차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IRA의 여파가 타격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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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IRA의 설계자로 불리는 맨친 상원의원의 '몽니'도 현대차그룹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맨친 상원의원은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리는 민주당 내 소장파다. 맨친 상원의원은 법안 합의 과정에서 미국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자신의 입장을 적극 반영했는데, 그 결과 논란이 되고 있는 '보조금 조항'이 들어가게 됐다. 맨친 상원의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 옐런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유감스럽게도 일부 차량 제조사와 외국 정부가 재무부에 해당 규정을 넓게 해석해 렌터카, 리스 차량, 공유 차량에도 보조금을 허용해주기를 요청한다고 들었다"며 "이를 허용할 경우 기업들이 북미지역 투자를 늘리지 않고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험성은 심화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재무부가 이달 말 IRA 가이던스(시행령)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한국 정부와 자동차 업계는 IRA 개정을 위해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비록 맨친 상원의원이 서한에서 특정 국가를 콕 집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IRA 개정을 위해 다방면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 중인 한국을 직접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후드 부사장의 발언이 공개된 뒤 일각에서 현대차그룹이 미국 공장 투자를 재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는 과도한 해석"이라며 "이미 기공식까지 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투자를 철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드 부사장이 멕시코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고자 한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후드 부사장은 이날 웨비나에서 현대차그룹에 있어 미국시장이 매우 중요하며 이 시장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IRA의 새 규정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향후 몇 년간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한국 정부와 현대차는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완공 시점인 2025년까지 3년간 북미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한 IRA 규정의 시행을 미뤄달라는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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