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 부사장의 발언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이 IRA 발효 후 미국시장에서 경쟁사에 밀려 전기차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IRA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주)이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며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직접 서한까지 보내면서 한국 자동차업계에 불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후드 부사장의 발언은 현대차그룹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현대차그룹으로선 일종의 '배수진'을 친 셈이다.
포드의 올 1~11월 미국 전기차시장 점유율은 7.8%로 현대차·기아를 제치고 전체 2위를 기록했다. 포드는 지난달 점유율 8.6%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포인트 늘어났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차 판매가 급감하면서 전체 판매량은 7.8% 줄었지만, 전기차 판매량은 오히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물론 현대차·기아도 신형 니로EV와 코나EV의 출시와 기저효과 등에 힘입어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7.7% 늘었지만, 아이오닉5와 EV6 등 주력 차종 판매량은 줄었다. 아이오닉5와 EV6 등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미국 판매량은 지난 7월부터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 11월 아이오닉5 판매량은 1191대로 10월(1579대)에 비해 24.6% 줄었다. EV6는 지난달 641대가 판매돼 10월(1186대)보다 46% 감소했다. 아이오닉5의 판매량은 지난 6월 2853대로 정점을 찍은 뒤 7월부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EV6도 정점을 찍은 올해 3월(3156대) 이후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한 차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IRA의 여파가 타격을 준 것이다.
미국 재무부가 이달 말 IRA 가이던스(시행령)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한국 정부와 자동차 업계는 IRA 개정을 위해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비록 맨친 상원의원이 서한에서 특정 국가를 콕 집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IRA 개정을 위해 다방면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 중인 한국을 직접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후드 부사장의 발언이 공개된 뒤 일각에서 현대차그룹이 미국 공장 투자를 재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는 과도한 해석"이라며 "이미 기공식까지 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투자를 철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드 부사장이 멕시코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고자 한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후드 부사장은 이날 웨비나에서 현대차그룹에 있어 미국시장이 매우 중요하며 이 시장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IRA의 새 규정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향후 몇 년간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한국 정부와 현대차는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완공 시점인 2025년까지 3년간 북미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한 IRA 규정의 시행을 미뤄달라는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이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