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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라가르드도 매파 본색 "유럽 내년초 최소 두차례 빅스텝"

김덕식 기자

한재범 기자

입력 : 
2022-12-16 17:36:29
수정 : 
2022-12-16 23: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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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경제 긴축 공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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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15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피벗(Pivot·정책 전환)은 아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15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돌직구를 던진 것은 유럽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폭을 기존의 0.75%포인트에서 0.5%포인트로 감속했지만, 이는 시장이 기대하는 '피벗'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상당 기간 꾸준히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게 유지되고, 오랫동안 목표치보다 높게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금리를 훨씬 더 인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0.5%포인트 인상을 할 수도 있고, 아마 이후에 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은 데이터를 검토하고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 발언을 두고 ECB가 내년 2월과 3월 최소 두 차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전망이라고 해석했다.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11월 물가상승률은 10.1%로 10월에 기록한 10.6%보다 다소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전년 동기에 비해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비교하면 우리는 다뤄야 할 더 많은 영역이 있으며, 우리는 더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당초 유로존 경제가 미국보다 낫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보다 유럽이 더 큰 혼돈에 직면했음을 인정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보다 연준의 물가 상승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주장해온 라가르드 총재가 입장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노동시장 과열과 이에 따른 임금 상승 압력에 따라 발생했다면, 유로존 인플레이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와 식품값 급등에 기인한다고 FT는 분석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인플레이션이 미국보다 훨씬 고착화될 가능성을 주목했다. ECB는 이날 2023년 평균 인플레이션 전망치로 6.3%를 제시했다. 올해보다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도 2023년 상당히 높은 수준인 4.2%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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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르드 총재는 이번 금리 인상 폭이 만장일치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방향 면에서는 전적으로 동의했다"며 "일부는 더 많이 하거나, 일부는 적게 하는 것을 원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라가르드 총재가 빅스텝을 밟으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대신, 매파적인 메시지를 기자회견에서 내보내자고 제안해 반대파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또 ECB는 이날 자산매입프로그램(APP) 포트폴리오를 축소하는 양적 긴축 돌입 계획도 발표했다. ECB는 "내년 2월 말까지는 APP에 따라 투자한 자산 중 만기가 도래한 경우 원금 전액을 재투자할 계획"이라며 "내년 3월부터 ECB가 보유한 채권이 줄어들 것이며, 감소폭은 내년 2분기까지 월평균 150억유로"라고 밝혔다. 시중의 유동성을 거둬들여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팬데믹 긴급 매입 프로그램(PEPP)에 대해서는 2024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한 자산의 원금을 재투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인 사항은 내년 2월에 추가로 발표된다.

라가르드 총재는 내년 침체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2023년 1분기에는 가볍고 짧은 경기 침체가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유로존 경제에 중대한 하방 위험으로 지속해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올해 3.4%에 이어 2023년 0.5%로 크게 떨어진 후 2024년에 1.9%, 2025년에 1.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유로존 경제가 에너지 위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세계 경제 약화, 금융 환경 긴축 등에 영향을 받는 탓이다.

같은 날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기준금리를 3.0%에서 3.5%로 0.5%포인트 올렸다. 영국의 기준금리는 1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BOE는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계속해서 금리를 인상해 왔다. 영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0월 11.1%로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지난달 10.7%로 다소 완화됐다. BOE는 경기 침체가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른다면서도 계속해서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에 영국 경제 성장세가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부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 가고 있지만 그만큼 경제 성장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배런스는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정책을 현행대로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되돌리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라가르드 ECB 총재의 '매파본색'에 독일 국채 금리가 치솟았다. 이날 독일 2년물 국채 금리는 0.24%포인트 뛴 2.36%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일 증가폭은 2008년 9월 이후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며 뉴욕증시도 주저앉았다. 이날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764.13포인트(2.25%) 떨어진 3만3202.22에 거래를 마쳤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60.36포인트(3.23%) 급락한 1만810.53에 장을 마감했다.

미국 투자은행 베어드의 마이클 앤토넬리 전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지금 시장에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며 "시장은 더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는 경기 침체 또는 연준이 도를 넘을 가능성을 염려한다"고 말했다.

[김덕식 기자 /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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