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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보릿고개 넘기자" 증권사들 고금리 상품 5.5조 폭풍 발행

김명환 기자

강민우 기자

원호섭 기자

입력 : 
2022-12-13 17:47:40
수정 : 
2022-12-13 20: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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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진까지 감수하며
DLB·ELB 발행 급증
◆ 연말 자금조달 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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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소형 증권사들의 최우선 목표는 자금 확보다. 연말 퇴직연금 상품에 주로 쓰이던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발행량이 최근 급격히 증가한 것은 그나마 손쉬운 자금 조달 채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중소형 증권사 대표)

이는 단기 자금시장의 '발작'이란 급한 불은 껐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유동성 위기 우려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ELB, 기타파생결합사채(DLB) 등에 증권사들의 손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내년 상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국내외 물가도 안정세를 보일 조짐이 뚜렷하지 않아서 증권가에서는 체력 확보 차원에서 자금을 끌어모으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13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 7~11월 증권사들의 ELB 발행액은 6조4566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조5825억원과 비교해 4배 넘게 늘었다. 발행 종목도 397건에서 828건으로 2배가량 늘었다. 발행 종목당 액수 역시 2배 증가한 셈이다. DLB의 발행 증가폭은 더욱 크다. 지난 8월 기준 4496억원 수준에서 지난달 2조5157억원까지 발행액이 급증했다. 석 달 만에 발행액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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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는 특정 기초자산에 수익률이 연동된다는 점에서 주가연계증권(ELS)과 같다. 하지만 증권사가 파산하거나 투자자가 중도 해지를 요구하지 않으면 원금이 보장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투자자들 또한 원금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ELB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판매 회사의 부실 위험이 현실화되면 원금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ELB는 사실상 증권사가 발행한 회사채"라며 "레버리지 부담이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LB의 경우 발행 어음이 불가능한 자기자본 4조원 미만의 중소형 증권사들이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ELB 발행 규모가 가장 큰 증권사는 현대차증권(8946억원), 하나증권(8478억원), 대신증권(6465억원) 등이다. 미래에셋증권(5961억원), 키움증권(5261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일반적으로 증권사들은 연말에 고금리의 ELB·DLB 발행을 늘리는 경향을 보인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머니무브'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올해는 과거와는 상황이 다소 달라졌다. 채권 시장이 경직되면서 원활한 머니무브가 어려워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연말에 고금리의 ELB를 발행하는 이유가 지난해까지는 퇴직연금 적립금 유치였다면, 올해는 자금난에 따른 유동성 확보로 보는 게 맞는다"며 "증권사 입장에서 ELB는 일종의 채권으로, 발행에 성공하면 자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과거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또한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고금리 ELB 발행이 이어지고 있다"며 "부동산 PF에 따른 자금 유동성 악화를 막고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자구책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아직 특별한 문제점은 없지만, ELB 발행이 급격히 증가한 점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금 시장 상황이 10월 말과 비교해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증권업계에서는 자금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북클로징(회계장부 마감) 시즌이면서 미국발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질 전망이라 회사채 발행이 여전히 쉽지 않아 대체 확보 방안인 ELB 등이 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LB에 눈을 돌린 증권사가 많아지자 발행 경쟁에 의해 희귀한 조건의 상품도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최근 IBK투자증권이 발행한 'IBK투자증권1269(ELB)'는 기초 자산인 코스피200이 만기 평가일(2023년 6월 7일)에 최초 기준 가격의 200% 이상이면 연 6.31%를, 200% 미만인 경우 연 6.3%를 이자로 지급한다. 코스피200이 6개월 내 2배 넘게 오를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사실상 6.3%를 확정 금리로 지급하겠다는 뜻이다.

메리츠증권이 지난 7일 발행한 만기 1년의 '메리츠증권356(ELB)'도 비슷한 조건을 내세운 상품이다. 이 상품은 삼성전자 보통주 가격이 만기 평가일(2023년 12월 4일)에 1000만원 이상이면 연 6.901%를 지급하고, 1000만원 미만이면 6.9%를 주는 조건으로 상품을 출시해 공모에 성공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ELB도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기초자산의 상승률만큼 수익을 지급하는 구조가 주를 이뤘는데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증권사는 은행처럼 예금을 활용할 수 없고 확정 금리를 주는 상품도 없다 보니 그런 구조를 활용하는데, 상품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니 억지로 지수나 주가를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보면 허위 광고나 유사수신행위 같지만 따져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율을 내세우며 자금 확보에 나서는 상품이라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ELB 조건을 좀 더 깐깐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증권사 입장에선 금리를 확정하는 것이 헤지 측면에서 필요하다"며 "은행 예금 상품들의 조건이 유리해지면서 안전 상품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을 끌어오는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높은 금리가 앞으로 증권사들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의 '실탄' 확보가 우선인 상황은 맞지만 위험 관리에 대한 병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근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만기를 적절히 분산한다든지 중도 환매 요청에 대비하는 선제적인 유동성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김명환 기자 / 강민우 기자 / 원호섭 기자]



[용어]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주가연계증권(ELS)처럼 정해진 조건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금융상품. 채권처럼 확정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이 많지만 판매사가 파산하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기타파생결합사채(DLB):이자율, 원자재, 신용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ELB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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