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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소아과 전공의 199명 모집에 지원 33명뿐… 어린이 병원이 사라진다

유주연 기자

신유경 기자

홍혜진 기자

입력 : 
2022-12-12 17:44:22
수정 : 
2022-12-12 19: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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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공백 후폭풍
낮은 수가·분쟁 위험에 기피
강원·제주대병원 지원자 '0'
"밤 당직 다음날 외래 다반사"
소아청소년 전공의 없는 병원
내년 32%, 2024년 60%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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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인천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병동이 텅 비어 있다. 이 병원은 이달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전문인력 부족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박형기 기자>
수도권에 거주하는 박 모씨는 얼마 전 아이가 밤늦게 심한 복통을 호소해 대학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진료를 봐줄 의사가 없었다. 한 명뿐인 소아청소년과 담당의가 다른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근처 병원에도 소아과 담당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박씨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소아청소년과 지원 전공의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며 필수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천의 상급종합병원 중 한 곳인 길병원마저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를 중단하면서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현재 길병원은 전체 1450병상 중 23병상을 소아청소년과 입원 병상으로 쓰고 있다.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상급종합병원 규모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 그만큼 의료계가 심각한 상황에 처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내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전국 소아청소년과 정원 199명 중 지원인력은 33명에 불과하다. 전체 정원 중 17%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내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정원을 채운 병원은 서울아산병원·강북삼성병원 두 곳뿐이다. 서울대병원은 정원 14명 중 10명을, 삼성서울병원은 전체 정원(6명)의 절반(3명)만을 채웠다. 지방으로 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순천향대천안병원·강원대병원·제주대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은 최근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2019년부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전국 기준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2019년 80%에서 2020년 74%, 2021년 38%, 올해 27.5%로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낮은 의료 수가와 의료 분쟁 위험 등이 전공의가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내년에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한 명도 없는 병원이 전체의 32%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에는 이 비율이 60%까지 급상승할 것으로 관측된다.

조안나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방 국립대병원에서 일하는 동료 교수들은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밤에 당직을 서고 다음날 외래 진료를 보며 버틴 지가 벌써 2~3년이 돼간다"며 "이런 상태로 1~2년은 더 버틴다고 해도 어떻게 10년, 20년을 버틸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의료계는 정부에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을 방지하고 진료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관계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교수도 "정부에서 특정 규모 이상의 종합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하게 하는 등 제도화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공의를 소아청소년과로 유도하기 위해 공공정책수가, 어린이병원 적자 보상안 등 연내에 대응 방안을 확정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유주연 기자 / 신유경 기자 /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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