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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국민연금 "재벌과 또다른 지배구조 문제"… 1차 타깃은 '황제 연임'

홍혜진 기자

이재철 기자

서진우 기자

입력 : 
2022-12-09 17:34:33
수정 : 
2022-12-09 22: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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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없는' 민영화 기업 겨냥
의결권 강화한 새 기준 적용
◆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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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이른바 '오너 없는 기업'을 겨냥해 주주권 행사 강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그간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재벌 기업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들 기업이 사실상 무풍지대에 놓였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직접 거론한 금융지주나 KT 등은 차기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놓고 기업 안팎의 인물들이 경합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견제용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이사장은 지난 8일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소유분산기업의 합리적 지배구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논의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현실에서 보면 소유분산기업의 회장 등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고착화하고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는다거나, 대표이사나 회장 선임 및 연임 과정에서 현직자 우선 심사와 같은 내부인 차별과 외부 인사 허용 문제를 두고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룰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유분산기업에서 회장이 거듭 연임하는 이른바 '황제 연임' 현상이나 외부 인사보다는 내부 등용을 우선하는 관행을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 이사장이 언급한 소유분산기업은 재벌그룹과 달리 명확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을 말한다. KT나 포스코, 금융지주 등이 해당된다. 김 이사장은 "그간 지배구조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고 기준에 대한 전문적 지식도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제는 소유구조가 광범위하게 구축된 기업의 이사회 기능 작동 방식 같은 건강한 지배구조 구축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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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이 같은 취지에 대해 공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을 지냈던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오너 일가가 지분구조 중심에 있는 재벌 기업은 오너가 계열사 전문경영인의 성과를 철저히 감시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소유분산기업은 상대적으로 이 기능이 부족하다 보니 모럴해저드나 대리인 비용이 클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한발 더 개입하겠다는 행보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대주주이면서 소유 구조가 분산된 기업들에 대해 공단 측이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히자 해당 기업과 재계는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의결권이 강화되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안은 CEO 임기가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지분율 8.99%)인 포스코홀딩스는 2018년에 3년 임기로 취임한 최정우 회장이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남은 임기는 2024년 초까지다. 최 회장은 본업인 제철뿐 아니라 2차전지 소재 등 신사업을 강화하면서 포스코그룹을 이끌어왔지만 지난가을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제철소가 침수되는 사태를 겪었다.

KT 역시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방침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올해 민영화 20년을 맞은 KT는 구현모 대표의 내년 연임 여부에 내외부 시선이 쏠려 있다. 내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구 대표는 최근 연임 의사를 이사회에 전달했다. 지난 8일엔 구 대표를 상대로 적격성을 평가하는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도 열렸다. 시장에선 내부 출신인 구 대표가 임기 중 탈통신 사업에서 경영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을 근거로 연임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KT 제1노조가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금융권에 대해 부분적인 견제를 해왔다. 국민연금은 단일주주 기준으로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한 다른 금융지주 3곳의 최대주주다. 우리금융도 2대 주주 지위에 있다. 다만 최근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했던 안건이 모두 가결된 바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성재호(감사위원), 변양호, 이윤재 등 사외이사 재선임과 관련해 반대표를 던졌지만 해당 안건은 주총에서 찬성률 65%로 가결됐다. 국내 금융지주가 주주배당 확대 등 금전적 주주 환원을 강화하고 있고, 이를 외국인 주주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점도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낮추는 대목이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국민연금이 지배구조와 관련한 의결권을 강화하면 민영화된 기업이 오히려 '정치적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각 부처 차관들을 위원으로 한다"며 "정부가 책임지고 기업 운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취지는 이해하더라도 구조 자체가 정권과 연계돼 있어 민영화된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 역시 "주주권 행사 등 스튜어드십코드 활동은 기금을 직접 운용하고 책임지는 제대로 된 주체가 기금 수익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과도하게 경영에 개입하면 오히려 주식가치 하락 등이 뒤따르는 만큼 수익과 어느 정도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마땅하다"고 전했다. 결국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주주권 강화는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걷어낸 뒤에야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혜진 기자 / 이재철 기자 /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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