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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고금리엔 닥치고 예금"… 개인들 3천억 넘게 金 팔고, 은행으로

김정환 기자

입력 : 
2022-12-02 17:44:52
수정 : 
2022-12-02 19: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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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 환수율 40% 육박
금리 5% 넘나들자 숨은돈 방출
정기예금 한달 56조 몰려 '최고'
예금잔액 931조…1000조 눈앞
올 개인 금 매도량 기관의 14배
덩달아 금고 수입량 30% 급감
◆ 고금리發 부채 축소 ◆
고금리發 부채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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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이 모씨는 최근 자택에 보관 중이던 현금 3000만원을 정기예금에 묻었다. 올해 초 금괴를 팔고 쥐고 있던 돈을 그대로 은행권에 옮겨 넣었다. 그는 "고금리 상황에 돈을 깔고 있어 봤자 도움 될 게 없다"며 "금융권 이자 수입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기 때문에 여윳돈을 은행 상품에 분산해 넣어 두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시중금리 상승 속도가 빨라지자 대출시장에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현상이 두드러진 반면 예금으로는 뭉칫돈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자들 금고 속에 꼭꼭 숨었던 현금과 금까지 잇따라 자금시장으로 나왔다.

2일 매일경제가 한국거래소 통계를 분석한 결과 개인투자자는 1~11월 거래소를 통해 3130억원어치의 금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증권사 등 기관이 팔아치운 물량(230억원)보다 14배가 더 많다. 올 들어 개인이 내다 판 금 규모만 4185㎏에 달한다. 개인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4년 이후 가장 많은 4220억원어치의 금을 쓸어담았다. 지난해에도 2270억원을 순매수했다. 경제 위기감이 커지며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개인들은 금 대량 매도로 돌아섰다. 이씨는 "경기 침체 불안감은 여전하지만 갖고 있어도 이자가 전혀 붙지 않는 금과 달리 은행 예금은 금리가 5%대에 육박한다"며 "예금과 금이 같은 안전자산이지만 투자 매력도가 달라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액권 상황도 비슷하다. 올해 한국은행이 발행했던 5만원권 10장 가운데 4장(39.0%·환수율)은 시장에서 유통된 후 한은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집계됐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

반면 금과 돈을 보관하는 개인용 금고 시장은 얼어붙었다. 이날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금고는 지난해에 비해 29.5% 급감한 426만7000달러가 수입되는 데 그쳤다. 금고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영국·스위스 등 고급 제품 등의 수요가 늘며 역대 최대인 605만2000달러 수입을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수요가 크게 줄었다.

이렇게 금고를 탈출한 자금은 대거 은행권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10월 예금은행 수신잔액은 2252조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116조원(5.4%)이 불어났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미 중앙은행 수장들이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다"며 "고금리 현상이 1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은행권 예금 증가 현상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5%를 넘나들었던 최근으로 시점을 좁혀보면 예금 증가 속도는 더 빠르다. 10월 예금은행 수신잔액은 전월에 비해 6조8000억원이 늘었다. 특히 정기예금에는 한 달 새 56조2000억원이 몰리며 2002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정기예금 수신잔액은 931조원으로 1000조원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11월 정기예금 잔액은 827조원으로 한 달 새 19조원 늘었다.

금리 상승에 개인 투자 매력이 높아진 채권시장으로도 돈이 몰린다. 금융투자협회 통계 분석 결과 1~11월 개인투자자의 국내 채권 순매수액(18조4500억원)은 지난해보다 3배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에 예금금리가 뛰는데 대출금리가 따라 오르며 경기 침체기 기업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히고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김정식 교수는 "금리 상승에 실물 부문 자금 경색이 심해지고 있다"며 "이 같은 악순환을 막기 위해 향후 통화당국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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